비혼 동거도 가족에 포함…자녀 성 '부성 우선' 폐기(종합)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확정…가족범위 규정 삭제키로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추진
비혼출산 설문·연구 착수…난자·정자공여 부처 간 협의 추진
육아휴직 모든 취업자로 확대…육휴급여 150만원으로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정부가 가족 범위에 대한 규정을 삭제하고 비혼 동거도 가족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부성 우선주의'를 폐기해 자녀의 성은 부모 협의로 정하게끔 원칙을 바꾼다. 장기적으로 의료기관이 모든 아동의 출생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도 검토한다. 비혼 출산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법·윤리적 쟁점에 대한 부처 간 논의에도 착수한다.

27일 여성가족부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올해부터 2025년까지 시행되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확정·발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인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30.2%, 2인 이하인 가구는 58.0%에 달한다. 그간 전형적 가족으로 인식되어 왔던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가구 비중은 29.8%로 감소했다.

만혼과 혼인·출산 감소 등으로 인해 전 생애에 걸쳐 1인 가구와 2인 이상 가구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전통적 가족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이 이뤄지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국민 10명 중 7명은 혼인이나 혈연이 아니어도 생계나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여긴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이에 정부는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을 줄이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자녀 성은 부모 협의원칙으로 정하게끔 민법 제 781조1항을 개정하기로 했다. 혼중·혼외자를 구분하는 친자관계 법령 정비도 검토한다. 혼중자나 혼외자라는 용어 대신 '자녀'로 통칭하는 것이다. 동거나 사실혼, 돌봄·생계를 함께하는 노년 동거 부부나 위탁가족 등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어지지 않은 실질적인 가족도 법의 보호를 받게끔 가족범위나 규정을 손질한다. 가족의 개념에 혼인·혈연·입양 외에 ‘비혼동거’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과 민법에서 아예 ‘가족’의 정의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건강가정기본법 상 가족의 범위를 혼인, 혈연, 입양으로 규정하고 있어 서비스를 받고 있음에도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했고 정책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차별적 인식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며 "가족 범위에 대한 규정을 삭제하더라도 다른 법이나 제도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며 차별적 인식 등에 긍정적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자를 기증받아 자녀를 출산한 사유리 씨 같은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연구에도 착수하기로 했다. 대리출산이나 정자·난자 공여 등 생명윤리나 비혼 출산 시술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상반기 중 진행하고, 정자 공여자의 지위나 아동의 알 권리 등 연구·제도개선 필요성을 검토한다. 정부가 난자·정자공여 대리출산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현재 비혼 가족 개념의 범위에서 비혼 출산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한다. 사유리씨도 한부모에 속하고, 지금은 비혼출산이나 보조생식술 출산 여부를 떠나 특정 소득 이하인 경우 양육비나 주거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혼자의 보조생식술을 금지하는 법은 없지만 난임시술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현실적인 제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비혼 출산에 대해 법·윤리·문화적 차원에서 여러 쟁점이 수반되는 사항이어서 부처간 적극적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시행계획이 마련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관이 공공기관에 출생사실을 알리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한다. 의료기관 출산 기피 등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장기적으로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이 모든 아동의 출생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제도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도 우리나라에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할 때 모의 소재가 불명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경우에도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대응 관련 경찰·전담 공무원 동행 요청이나 실태를 점검해 제도 개선에 나선다. 비혼 동거 가족의 폭력을 ‘가정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배우자 규정을 고치는 방안과 가정폭력 범죄 반의사불벌죄 폐지도 검토한다.

정 장관은 "비혼 동거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대한 처벌이 규정되어 있지 않고, 이 관계를 어떻게 법에 포함시킬 지 논란이 많다"면서도"가족 구성원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제한된 가족 폭력의 정의에 교제관계에 있는 자 사이의 폭력 행위를 포함하는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도 발의되어 있고, 법적으로 명료하게 정의해서 지원할 수 있도록 기본계획 기간 내에 이 부분을 개선해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자녀 양육 생활 보장에 필요한 지원책도 늘린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 등도 육아휴직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대상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정부는 육아휴직 대상 단계적 확대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정과 예산 등 세부 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2022년부터 육아휴직 급여도 월 최대 150만원으로 30만원 인상한다. 만 0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 모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각각 3개월씩 월 최대 300만원을 지원한다. 올해부터 만 19세 이하까지 청소년 부모 임신·출산 의료비를 지원하고 만24세 이하까지 순차적으로 늘린다.

이혼후 양육비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입증 책임을 채권자가 아닌 채무자가 하게끔 변경하고 일부만 이행하는 경우에도 감치명령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오는 7월부터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처벌도 가능해진다. 자녀 양육 의무를 불이행한 경우 상속에서 제외하는 일명 ‘구하라법’ 도입도 검토한다.

1인가구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생애주기별 사회관계망 사업’도 시행한다. 청년에게는 독립생활 준비 교육을, 중장년층에게는 심리상담 등 생애후반기 진입 준비 교육을, 고령 대상 가사나 가정관리 등 일상 돌봄기술 교육 등을 제공한다. 1인가구 증가 추세를 반영한 복지급여 단위 기준 분석·평가도 추진한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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