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기자
[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1. 27세 남성 A씨는 지난해 8월 지하철 2호선에서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수치심을 느끼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피해자분께 죄송하다. 다시는 죄짓고 살지 않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2. 마찬가지로 27세 남성인 B씨도 지난해 10월 지하철 9호선에서 피해자 엉덩이에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밀착해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 역시 "그날 이후 많이 반성하고 피해자분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이 바르게 살겠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정성완 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의 선고공판을 열고 각각 벌금형 300만원을 선고했다.
공중밀집장소추행죄를 다루는 성폭력처벌법 제11조는 '대중교통수단과 공연·집회 장소, 그 밖에 공중이 밀집한 장소에서 사람을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공중밀집장소추행죄는 2013년 이후 매년 1500건 이상 꾸준히 발생 중이다.
그런데 2019년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A·B씨처럼 2017년 지하철에서 피해자의 허벅지를 만져 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남성 C씨가 "성폭력처벌법 제11조는 죄형 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 등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낸 것.
'추행'은 추상적 개념인데도 행위자의 목적과 수단, 피해자의 상태 등에 관한 추가적인 구성요건을 두지 않아 의미가 불명확하고, 우연한 신체접촉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우려도 있다는 취지였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지난 1일 성폭력처벌법 제11조에 대해 "명확성과 과잉금지원칙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행위가 해당 조항에서 다루는 추행에 해당하는지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공중밀집장소추행죄의 성립은 추행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또 피해자의 성별과 나이, 행위자와의 관계, 사건의 경위,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추행의 고의가 없는 우연한 신체접촉만으로는 해당 조항에 따라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과잉금지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대검찰청 등 통계에 따르면 공중밀집장소추행죄는 매년 꾸준히 발생 중이며, 다중이 출입하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사람을 추행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불쾌감과 수치심을 주는 행위"라며 "이 같은 행위를 형사 처벌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중대한 공익”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청구인은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추행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을 받게 될 뿐"이라며 "심판대상조항으로 달성되는 공익이 침해되는 사익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