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5년 차 직장인인 20대 김 모 씨는 최근 잠을 자도 피로하고 짜증과 스트레스가 늘었다. 주말이면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 활동을 즐길 만큼 활동적인 성격이었지만 근래엔 이마저도 줄었다. 김 씨는 "평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주말에도 놀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며 "입맛도 없고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특히 모바일 메신저가 활성화된 후 퇴근 후에도 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일이 늘었다며 업무를 마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김 씨처럼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인한 무기력증과 자기혐오, 수면장애, 신경과민,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지난해 7월 직장인 7만210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직장인 중 71%는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여성(76%)이 남성(67%)보다 번아웃을 더 많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9년 5월 번아웃 증후군을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제대로 알고 관리해야 하는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인정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일부 기업에서 시행 중인 재택근무로 인해 오히려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장인도 있었다.
30대 직장인 강 모 씨는 "집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엔 좋았지만, 업무와 집안일이 분리되지 않는 느낌"이라면서 "집에서 일을 하면 회사에 있을 때보다 업무적으로 불편한 점이 많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일이 잘 안 되니 요즘은 더 쉽게 예민해지고 화도 자주 내게 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번아웃 증후군은 직장인 뿐 아니라 취업준비생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6월 취업준비생(취준생) 1858명을 대상으로 '취업 준비 피로감'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7%가 '취업 준비 중 번아웃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이 모(24) 씨는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스펙을 쌓고 준비 했지만, 노력을 해도 계속 면접에서 탈락하다 보니 이젠 열심히 해도 안 될 것이란 생각에 무기력해진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이 번아웃을 경험한 가장 큰 이유로는 '취업준비 비용, 생활비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69.0%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는 '코로나19 속 공채 취소/연기, 수시채용 등 기약 없는 채용환경(60.8%)', '부모님 등 주변 지인들의 관심과 기대(47.6%)',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42.6%)', '해도 해도 부족한 스펙(42.1%)' 등이 뒤를 이었다.
취준생이 느끼는 번아웃 증상으로는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고 아침부터 피곤하다(62.3%)',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감을 느낀다(57.6%)', '정서적으로 지쳐 감정에 둔해진다(46.1%)', '취업 준비를 하는 데 있어 완전히 지쳐서 무력감, 탈진감을 느낀다(45.7%)' 등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기악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충격이 장기화하면서 취준생들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는 적당한 휴식과 여가 생활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열심히 노력하고 달렸는데 기대만큼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노력한 만큼 실망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며 "또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경제불황으로 인한 취업시장 축소 등 미래에 대한 전망 자체가 불투명한 영향도 있다. 경제적으로 압박감이 누적돼 불안 증상이 찾아오고 불안이 장기화하면 사람은 우울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자기 주변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장기 목표가 아닌 매일매일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목표를 단기적으로 세워보는 방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스트레스를 회복할 수 있다. 특히 우울감이 느껴질 때는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등 고립되어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