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기자
[아시아경제 김영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층간소음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비슷한 수준으로 층간소음을 유발한 집에 소음을 발생시키는 소위 '층간소음 복수 도구'까지 등장했다.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층간소음 갈등은 한층 심각해지는 추세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은 3만610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3843건)보다 51% 늘었다.
층간소음 문제가 지속하자 인터넷 쇼핑몰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우퍼스피커와 진동 스피커, 골전도 스피커, 벽돌 망치 등 '층간소음 복수 도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똑같이 소음을 발생시켜 이웃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이다.
이런 제품 가운데 골전도 스피커의 경우 층간소음 분쟁이 만들어낸 제품이다. 일종의 시대상으로 볼 수 있다. 골전도는 음파를 두개골의 뼈를 통해 '내이'(內耳)로 보내는 기능이다. 이 기술은 보청기나 헤드셋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복수 도구'를 찾으며 수요가 늘자 일부 업체에서 '골전도 스피커'를 개발, 판매에 나섰다.
층간소음에 복수할 수 있도록 최적화한 이 제품의 외관은 기다란 봉 끝에 스피커가 달려 있다. 이 스피커를 천장에 압착시킨 뒤 휴대폰으로 연결해 음악 파일을 재생한다. 평범한 음악부터 소음 수준에 따라 헤비메탈 음악까지 사용자가 받은 소음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말 그대로 복수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제품이 판매될 정도로 층간소음 피해자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층간소음 복수하고 싶다'라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한 커뮤니티 회원 A 씨는 "정말 이를 악물게 하는 윗집 때문에 너무 열 받는다"라며 "관리실에 민원을 넣어도 똑같아서 이제 슬슬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데 층간소음 복수해보신 분들 신박한 방법 있다면 추천해달라"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 B 씨는 "가벼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안 당해보면 절대 모른다. 당하고 나면 왜 층간소음 문제가 더 큰 범죄사건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서 안 그래도 예민한데 조용히 해달라고 몇 번을 말해도 매번 쿵쿵거려서 미칠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토로했다.
유튜브에는 소음을 유발하는 '층간소음 복수 도구'로 이웃에 보복을 했다거나 복수를 위해 윗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영상들도 등장했다. 이 같은 영상에는 '층간소음으로 화나 있는 상태에서 봤는데 속이 좀 후련하다', '대리만족 하려고 들어왔다', '나도 온종일 어떻게 해야 윗집을 곤경에 빠뜨릴지 고민하며 지옥같이 산다'라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처럼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 처벌 등 뚜렷한 규제 방안은 마련되어있지 않다. 2016년부터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에 관한 규칙'이 마련됐으나 소음의 범위와 기준만 정해져 있을 뿐, 기준을 넘겼을 때의 처벌에 관한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또 층간소음이 발생했을 경우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와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조정을 신청할 수도 있지만, 조정신청을 할 경우에도 대부분 권고 조치가 시행되는 선에서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처벌 규정 등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층간소음 교육을 시행해달라', '법안을 마련하거나 건축물 허가 기준을 바꿔라' 등의 층간소음 관련 청원 글이 이번 달 동안만 4건 이상 올라왔으며, 지난달에도 '층간소음 법적인 보호조치를 강화하라', '벌금형 제도를 도입하라' 등의 청원이 꾸준히 올라왔다.
전문가는 이웃 간 이분법적 사고를 줄이며 서로가 최대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몰고 온 현상 중 하나가 '사회와 거리를 두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라며 "현대사회는 점점 더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라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내가 아닌 남은 모두 적처럼 여기는 이분법적 의식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그 속에서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층간소음 문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사고가 첨예하게 적용되는 문제 중 하나"라며 "힘들어도 모두가 시민사회의식을 기르며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진영으로 나뉘어 있는 사회 속에서 갈등은 자꾸만 생겨나는데, 윗집에서도 조심하고 아랫집에서도 조금은 이해하면서 일종의 윤활유 같은 관계를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제언했다.
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