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곤기자
서울 중구 한 번화가 담벼락에 길고양이 돌봄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걸려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길고양이 돌봄을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고양이를 돌봐야 한다는 입장은 추운 겨울 먹이를 제대로 찾지 못해 고양이가 굶는 등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입장에서는 길고양이가 쓰레기 봉지를 뜯는가 하면 각종 악취에 소음까지 극심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서울 중구 한 번화가 골목 담벼락에는 '길고양이 사료 안내판'이 내걸려있다. 안내문에는 "길고양이 먹이를 훼손하시면 안 돼요"라며 "이 지역은 길고양이를 관리하는 자원봉사자가 있으니 훼손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다. 특히 "이 지역은 지자체와 자원봉사자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고 관리하는 지역입니다"라며 길고양이 돌봄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길고양이 밥을 준다고 숫자가 늘지 않는다"면서 길고양이 돌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된 비판 내용인 '고양이 개체 수 증가'에 대해 반박했다.
길고양이 돌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평소 동물 복지 등에 관심이 많다고 밝힌 3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것에 찬성한다"면서 "일단 하나의 생명 아닌가, 그 생명이 위태롭고 또 위험에 처해있는데 외면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반대 의견도 있다. 고양이 돌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가 늘면서 쓰레기봉투를 헤집거나 각종 악취에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반대의 주된 이유다.
4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일부에서 고양이 돌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동물 학대자'라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라면서 "고양이가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 봉지를 뜯는 등 생활 불편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종 악취에 고양이 울음소리 등 소음도 무시할 수 없다. 정말 큰 스트레스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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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돌봄이 이웃간 갈등 양상으로 번지면서 일부에서는 극단적 상황까지 나온다. 지난 5일 전주 한 공원에는 "고양이 밥주는 X 공기총으로 사살"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이 내걸려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기도했다. 이 경고문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인근 공원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고문은 현재 사라진 상태다.
그런가 하면 직접 길고양이를 죽이는 경우도 있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에 따르면 지난 8월9일 오후 2시께 포항시 남구 모 기관 옆 나무에 고양이가 죽은 채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캣맘'(길고양이 돌봄이)이 발견했다. 발견 당시 이 고양이는 흉기 등에 의해 심하게 훼손돼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관계자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은 건지 모르겠다"며 "경찰에서 꼭 범인을 잡아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길고양이 돌봄 중 갈등의 한 원인인 길고양이 개체수 문제 해결을 위해 각 '중성화 사업(TNR)'과 '급식소 설치'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찬반 의견이 치열하다. 예컨대 급식소 설치의 경우 반대 입장은 급식소 주변으로 고양이가 몰려 소음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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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단체는 길고양이 등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의 상생을 제언했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는 "길고양이를 돌보기 위해서 우선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주변엔 고양이나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며 "도심 속에 길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길고양이를 사랑하고 측은히 여기는 내 마음만을 강조해서는 주민들과의 마찰을 일으킬 뿐이고, 그것은 길고양이들의 생존문제로 직결된다"며 "주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밥만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임있는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언제나 돼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또한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 또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중성화된 길고양이는 성격이 온순해지고 발정음을 내지 않아 조용해진다. 중성화되지 않은 타지역 고양이의 유입을 막아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