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봤던 시계 2점 다시 보여줘요' 롤렉스 절도 사건의 전말 [한승곤의 사건수첩]

경남 창원 시계점서 롤렉스 시계 두 점 피해
용의자 손님으로 가장해 방문…손목에 시계 찬 채 그대로 도주
훔친 롤렉스 1점 서울 종로 금은방에 팔아
나머지 1점 분실 주장…경찰 수색 중

지난 8일 오후 4시7분 경남 창원 한 시계점을 방문해 롤렉스 시계 두 점을 가지고 도주한 절도 용의자 A 씨가, 범행 전 시계점 주인 정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시계점 폐쇄회로(CC)TV. 사진=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일단은 도망가는 걸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쫓아나갔습니다."

경남 창원에서 4년째 시계점을 운영하는 정 모 씨는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손님으로 나타난 그는 처음부터 수상한 구석이 많았다. 일명 `명품 롤렉스 시계 도난사건`을 정 씨와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다.

지난 8일 오후 4시7분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한 시계점에 나타난 A(34) 씨는 손님으로 보기에는 어색한 점이 많았다.

그는 "롤렉스 시계를 보러 왔다"고 얘기한 뒤 약 20분가량 롤렉스 시계 두 점을 번갈아가며 고민했다. 결국 그는 "다시 방문하겠다"며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고 매장을 나갔다.

정 씨는 "절도 사건 후 폐쇄회로(CC)TV 영상을 돌려보니 범행 장소 둘러보는 행동이었던 듯 합니다. 매장을 이리저리 보더라고요"라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가게를 떠난 시각은 오후 4시25분이었다.

실제 절도당한 두 점의 롤렉스 시계. 사진=시계점 주인 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낮에 보고 간 시계 두 점을 다시 보여달라"

A 씨는 이날 오후 6시56분에 다시 시계점을 찾아왔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정 씨는 그가 "퇴근 시간 될 때 쯤 다시 방문하여 낮에 보고 간 두 점을 다시 보여달라고 한 뒤 한참을 고민하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다음에 방문해주실 수 있나요."

퇴근 시간이 다가온 정 씨는 A 씨에게 재방문을 요구했다. 가게 청소를 하고 퇴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A 씨는 "조금만 더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시 가게에는 손님 1명이 있었고, 정 씨는 이런 상황으로 인해 "A 씨가 이 손님이 가게를 떠나 주인과 자신 단 둘만 남기를 노린 것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정 씨가 A 씨에 대해 수상한 낌새를 느낄 무렵 A 씨는 가게 소파에 앉아 누군가 전화통화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 보고 있는 시계 가격 좀 나가는데, 지금 있는 시계 팔고 조금 보태서 살까"라며 자신이 여전히 롤렉스 시계에 대해 관심이 있음을 드러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정 씨는 이 순간에 대해 "지금 생각하면 눈속임 같다"라고 말했다. 처음 방문하고 재방문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롤렉스 시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범행 징후를 없애고 손님으로 보이려는 계획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시계 매장에 있던 손님 1명이 밖으로 나갔고, 정 씨는 A 씨에게 "시계 결정하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A 씨는 "10분만 더 고민하고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이 상황에 대해 정 씨는 "그땐 몰랐지만, 오셨던 손님도 범인이 수상했던지 입구 쪽에 서서 범인을 보고 있더라고요. 그때 저도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좀더 의심 못한 게 후회됩니다"라고 말했다.

절도 용의자 A 씨가 손목에 롤렉시 시계를 차고 있다. 사진은 시계점 폐쇄회로(CC)TV. 사진=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때마침 인근 가게에서 일하는 지인이 프린터 좀 쓰자며 시계점에 들어오자 A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 와이프 데리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떠났다. 그가 떠난 시각은 오후 9시22분이었다.

정 씨는 이날 A 씨 행적을 두고 "절도사건 후 CCTV 영상을 돌려보니 확실히 범행 저지르려는 행동들이 많이 포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퇴근 시간에 맞춰온 것도 그렇고 다른 손님 눈치 보는 것도 그렇고 지인이 들어오니 바로 가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지문을 안 남기려고 방문 첫날부터 범행 때까지 손을 진열장에 올려놓는다든지 지문이 묻을만한 행동을 안 했습니다. 계획성 범죄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절도 용의자 A 씨가 시계점에 세번째 방문해 손목에 롤렉시 시계를 차고 있다. 사진은 시계점 폐쇄회로(CC)TV. 사진=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내에게 두 점 모두 사는 것을 허락받았다며 두 점 모두 보여달라"

A 씨는 다음날인 9일 오전 10시18분 이 시계점을 다시 찾았다. 세 번째 방문이었다. 정 씨는 진열장에서 롤렉스 두 점을 꺼내 A 씨에게 보여줬다. A 씨는 보증서도 같이 보고 싶다고 얘기해 보증서도 꺼내서 보여줬다.

정 씨에 따르면 A 씨는 양쪽 손목에 시계를 찬 뒤 보증서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본인이 가지고 온 롤렉스를 꺼내며 "매입가를 알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보여준 롤렉스는 진품이 아닌 가품이었다.

이에 정 씨가 잠시 확인하려던 찰나 A 씨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보증서까지 챙기고 그대로 밖으로 달아났다. 가게 방문할 때 신었던 신발까지 놔두고 도주한 상태였다. 이때 시각이 10시22분. 가게를 방문해 나가기까지 채 5분이 안 걸렸다.

절도 용의자 A 씨가 롤렉스 시계를 찬 채 밖으로 나가고 있다. 사진은 시계점 폐쇄회로(CC)TV. 사진=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도둑이야!"

눈앞에서 고가의 롤렉스 시계 2점을 도둑맞은 정 씨는 곧바로 달려나갔다.

정 씨는 "저도 순간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잡으러 뛰어갔고 차도 쪽으로 뛰어가더니 차가 오는데도 뛰어 건너갔습니다"라면서 "앞에서 '도둑이야'고 소리치면서 따라갔고 차도에서 차가 와서 잠시 주춤하던 사이 범인과 저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저도 무작정 차도를 건너 뛰어갔고 잡으러 가던 중 넘어지며 놓쳤습니다"라며 "달리는 것에 자신이 있어 훔쳐 달아나는 것을 미리 계획한듯합니다. 뛰는 것도 잘 뛰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범인은 도주 중 보증서 카드 하나를 바닥에 흘렸다. 이를 주운 정 씨는 추격을 멈추고 가게로 와서 경찰에 신고했다.

절도 용의자 A 씨가 롤렉스 시계를 찬 채 도주하고 있다. 사진은 시계점 폐쇄회로(CC)TV. 사진=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창원 중부경찰서는 절도 혐의를 받는 A 씨를 붙잡아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롤렉스 시계를 훔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창원 내 롤렉스 시계 취급점을 검색했다. 사실상 계획 범행인 셈이다.

범행 직후 도주 계획도 있었다. 그는 지인에게서 미리 빌린 차를 타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이어 서울 종로구 한 금은방에 들어가 훔친 시계 한 점을 1600만 원을 받고 팔았다.

이후 A 씨는 부모가 거주하는 경남 창녕으로 다시 도주했다. 경찰은 그의 동선을 추적한 끝에 지난 14일 창녕에서 A 씨를 붙잡았다.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경찰 조사에서 "시계를 판 돈은 빚을 갚거나 생활비를 쓰는 데 다 썼고, 나머지 시계 하나는 잃어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시계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A 씨의 주장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범행 직후 도망갈 당시 훔친 시계 보증서 하나를 떨어뜨려 이 때문에 결국 처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절도 용의자 A 씨가 롤렉스 시계를 찬 채 도주하고 있다.(상단 붉은색 동그라미) 그 뒤로 시계점 주인 정 씨가 A 씨를 쫒아가고 있다(하단 동그라미) 사진은 시계점 폐쇄회로(CC)TV. 사진=정 씨 제공.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현재 경찰은 구속된 A 씨를 상대로 또 다른 범행 여부 등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정 씨는 사건 당일 수상한 점이 많았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저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처음에는 손님으로 왔기 때문에 크게 의심은 못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2번 3번 방문할 때는 조금 의심스러웠고,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어도 코로나 때문이겠거니 하고, 마스크를 벗으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욱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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