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마음의 멍이 제일 아프지' 서글픈 황혼, 욕 먹고 매 맞는 노인들

"맞고 욕먹어도 어디가서 말 못하지"
"젊은이들이 노인들 왜 좋아해 다 싫어하지"
'노인학대 예방의 날' 지난해 정서적 학대 피해 가장 많아
때리는 신체적 학대…방치하는 방임도 늘어

15일 오후 서울 종로 낙원상가 일대 한 그늘에 노인이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 오늘은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욕설과 폭행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허미담 기자, 김봉주 인턴기자] "욕하고 무시하고 때리고…그냥 무섭지 뭐…"

15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일대에서 만난 노인 김모(82·여)씨는 "요즘 뉴스를 보면 노인학대가 꾸준히 일어나는 것 같다"면서 "여기 있는 노인들은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대다수다. 그래서 '학대를 당했다'는 말은 주변에서 듣지 못했지만, 뉴스를 보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무섭더라"고 토로했다.

이어 "노인학대는 당연히 없어야 한다"면서 "나는 혼자 살아서 이런 걱정은 크게 하진 않지만, 혹여나 노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거나 할까 봐 무섭다"라고 하소연했다.

학대받는 노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시가 이날(15일)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시에서 운영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 3곳의 운영보고서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서울에서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는 총 1963건으로 관련 통계를 처음 작성했던 2005년 590건에 비해 3.3배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복지부)가 발표한 '2019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이하 보고서) 결과에서도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6천71건으로 전년(1만5천482건)보다 3.8% 증가했다.

노인학대는 보통 여러 유형의 학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정서적 학대 피해를 호소한 사례가 42.1%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학대(38.1%), 방임(9.0%) 등이 뒤를 이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 낙원상가 일대 한 그늘에 노인들 줄지어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탑골공원 인근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던 최모(80)씨는 노인혐오를 인정한다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최 씨는 "젊은이들이 우리 나이대 사람을 안 좋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라면서 "우리 자식들도 나를 좋아하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내 자식도 폭행까진 아니지만 내가 싫다고 집을 나가라고 하더라. 자식이 세 명인데 유독 아들만 그런다. 지금 아들과 안 만난 지는 5~6년 되는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정말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면서 "나이 먹으니까 갈 곳이 없어서 여기(탑골공원)만을 찾게 된다. 나와 함께 놀던 친구들은 다 돌아갔고, 마땅히 놀 곳이 없어서 여기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영등포구 노량진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을 찾는다고 밝힌 조모(83)씨는 "다 나이가 안 들 것 같으냐.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나이가 들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닥쳐올 미래는 생각하지 못한 채 노인혐오를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인들을 반겨주는 곳이 어디 있냐. 근데 여기 오면 밥도 주고 친구도 만날 수 있다. 다른 곳을 갈 필요가 딱히 없는 거다. 탑골공원은 늙은이들을 위한 장소다. 근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놨으니, 갈 곳 없는 노인들은 이곳을 배회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 낙원상가 인근에 있는 무료급식소 앞에 노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노인에 대한 예절 등 교육이 잘못되어 폭행 등 노인혐오가 일어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종로 3가역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김모(74)씨는 "노인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들이 자식 교육을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노인공경'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장유유서 정신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했더라면 노인을 향한 학대가 덜 일어났지 않을까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종로 낙원상가 일대에서 만나 노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사실상 학대를 당해도 어느 곳에 마음 편히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는 셈이다.

또 자식이 집을 나가라는 폭언을 들어도 그냥 속앓이만 하면서 상황을 개선하거나 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못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일대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아있다. 이날 아시아경제 취재진이 만난 노인들은 노인들에 대한 폭행 등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털어놓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사진=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이렇다 보니 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행위가 반복되는 재학대 사례도 빈번하고, 특히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97.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학대 행위자(총 5777명)와 피해 노인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아들 1803건(31.2%), 배우자 1749건(30.3%) 순으로 많았다. 아들과 배우자를 합치면 61.5%로, 이 중 배우자 비율은 해마다 높아졌다.

복지부는 이 같은 노인학대를 사전에 발견하고 재학대 방지 대책을 강화할 계획이다. 노인 의사에 반해 재산이나 권리를 빼앗는 경제적 확대를 막고자 통장관리 서비스, 생활경제 지킴이 사업 등을 시범 운영한다.

한편 복지부는 내달 22일까지 '사랑을 전하면 희망이 됩니다'를 주제로 한 나비새김 캠페인을 한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나비새김 캠페인을 통해 주변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노인학대를 가정 및 시설 내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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