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칼럼] 철도 건널목

어렸을 적 일본에 다녀오신 학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일본에서는 버스나 택시기사는 철도 건널목을 건널 때마다 항상 일시정지를 하면서 "왼쪽 이상없습니다. 오른쪽 이상 없습니다. 출발하겠다"는 말을 꼭 하고 건넌다는 것이다.

이후 성인이 돼서 일본에 직접 가서 보게된 안전에 관한 여러 가지 모습들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솔직히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 한국인의 안전의식은 왜 따라가지 못하는가? 그저 국민성때문인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런데 몇 달 전 지인이 '기가 막히다'면서 전해온 말이 나를 생각의 굴레에 잠기게 했다. 일본에서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는 중에 경찰에게 붙잡혔다가 10만원 가까이 위반딱지를 떼었는데 이유가 건널목 3초간 일단정차를 안 했다는 것이다. 나는 혼돈스러웠다. 일본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선진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라 법률과 계도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였구나!

다시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예전 1980년대에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한국인들은 삿대질하며 목소리부터 키우는데, 미국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경찰이나 보험사를 기다린다는 상황을 보고, 한국인의 민족성까지 들먹이며 나쁜 특징처럼 일반화하며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보험제도가 잘 운영돼 우리도 이제는 언성을 높히기보다는 보험사에 연락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민족성과 상관없는 법과 제도의 관리의 문제다. 오래전에 이경규씨가 양심냉장고를 걸고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정차하는 차량을 기다렸지만 한 대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네 형편없는 시민의식은 마치 경쟁하듯 정지선을 앞서나와 횡단보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정부와 경찰의 계도와 단속을 계기로 지금은 많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후진 국민성이나 민족성, 저급한 시민의식을 들먹일 문제가 아니라 세련된 법률과 제도의 운영의 문제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그에 맞는 새 옷과 새 신발 그리고 예절교육이 필요하듯이, 시민의식이 성장하려면 그에 맞는 새 법률과 알맞은 계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불법 주차의 경우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 소방차나 구급차의 통행을 방해하여 제천 화재 참사처럼 대형 참사로 번지거나, 병원 후송이 늦어져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사례도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나, 유럽 등의 선진국의 경우 강력한 단속 및 벌금부과를 통해 도덕적 해이를 법과 제도로 방지하고 이를 통해 시민의식 제고를 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아이가 아이로만 있는 것 같다가 사춘기 때 갑자기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시민의식이 지금 폭팔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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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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