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주상돈기자
거제·울산 현지르포
거제 횟집사장은 유튜버로 생계유지…울산 영업맨은 실직
정부 '소주성' 매몰된 사이 경쟁력 떨어진 전통산업 구조개혁은 뒷전
잠재성장률 '자유낙하'…향후 10년내 1%대 추락 우려도
[거제(경남)·울산=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주상돈 기자] 거제 고현시장에서 횟집을 하는 윤모(43)씨는 구독자 1만명을 넘게 모은 유튜버다. 장사하는 도중 '상어회를 떠봤습니다' '장어 15㎏ 손질 생방송' 같은 영상을 틈틈이 찍어서 올린다. 가게 앞에도 '유튜브 방송하는 집'이라는 팻말을 걸어놨다. 좋아서 시작한 방송은 아니었다.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사람들 수만 명이 떠나자 저녁엔 앉을 자리가 없던 횟집 골목에도 파리가 날렸다. 매출은 반의반 토막이 났다. 윤씨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된 '생존형 유튜버' 아입니꺼. 이래야 방송 보고 외지 사람들이라도 찾아오지예. 지는 젊어서 이런 거라도 하지, 어르신들은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상황 아인교"라고 말했다.
거제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이모(56)씨는 4년 전 조선소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직장을 관뒀다. 20년 넘게 다니던 조선소 야드를 지금도 제집처럼 훤히 꿰고 있다. "해양플랜트 수주가 밀려들 때만 해도 눈만 달려있으면 하루에 14만~15만원은 받았어예. 원룸촌도 방이 없어서 사람들이 찜질방에서 자고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받아야 일당 10만원짜리 일자리 찾기도 힘듭니더. 빈방도 많고 월세는 반통가리 나고, 심한 데는 집값이 '원 플러스 원'까지 됐어예."
최근엔 조선소 수주가 움트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알고 보면 원가에도 못 미치는 '마이너스 수주' 투성이라는 게 이곳 이야기다. "원가도 안 되는 가격에 선박을 수주하니께 이틀 낄 장갑 나흘끼고, 바꿔야 할 설비 고쳐 쓰고 상황이 말이 아닙니더. 자체적으로 허리띠 졸라매는 것밖에 방법이 있겠습니꺼." 거제 조선소 관계자의 말이다.
자동차의 도시 울산에서 30년 가까이 자동차 영업맨으로 일한 차모(55)씨도 며칠 전부터 실업자 신세가 됐다. 3년 전만 해도 매달 80대는 팔았지만 요즘엔 20대 팔기도 힘들어 가게 월세조차 낼 형편이 안 되자 영업을 접었다. "예전엔 지역 공장 직원들이 자식 대학 갔다고 차 사주고, 은퇴하믄 세컨드카까지 샀는데 인자는 발길이 뚝 끊겼다 아입니까. 마, 죽겠습니더."
오는 9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거제, 울산과 같은 '한국판 러스트벨트(제조업의 사양화로 불황을 맞은 지역)'는 통영, 군산, 구미, 창원 등 전국 곳곳에 있다. 기존 전통 산업은 하락세인데 새로운 먹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2년6개월 동안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등 분배에 정책 초점을 맞추느라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뒷전으로 미룬 결과다.
구조개혁이 늦어지면서 잠재성장률은 자유낙하 중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은 2.5~2.6%. 20년 전인 2001~2005년(5.0~5.2%)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6~2020년 잠재성장률(2.7~2.8%)도 2년 전 추정치(2.8~2.9%)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잠재성장률은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로 한 나라 경제의 최대 성장 능력을 의미한다. 잠재성장률이 이처럼 낮아졌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일시적인 경기 부진이 아니라 장기적 저성장의 덫에 걸려 들었단 뜻이다. 향후 10년 내 잠재성장률 1%대를 언급하는 민간경제연구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6년, 한국경제연구원은 2030년으로 예상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산업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구조개혁의 핵심은 규제를 없애 진입장벽을 낮추고 기술 혁신을 유도하고,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울산 현대중공업과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합병해 '한국조선해양'을 만드는 계획이다. '타다' 같은 신산업을 키우는 것도 또다른 축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0년대 일본이 경제를 살리려고 재정 지출을 늘리고 기준금리를 내렸을 때 딱 하나 안 했던 게 산업 구조조정이었다"며 "이후 일본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다가 2012년 아베 내각이 들어선 이후 전통 제조업은 버리고 지식산업을 키우면서 2013~2014년 잠재성장률도 상승했다"고 조언했다.
올해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투자와 소비가 꺾여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도 한참 떨어진 1%대까지 내려앉을 가능성도 높다. 올해 초 정부가 예상한 성장률 목표 2.6~2.7%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같은 경직적 노동정책이 시행됐고,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구조개혁은 늦춰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지적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