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느리다고 멈춘 것은 아니다

남동준 텍톤투자자문 대표

케냐의 육상 영웅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마라톤 42.195㎞ 코스를 1시간59분40초에 완주했다. 인류 역사상 마라톤 코스를 2시간 이내에 주파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물론 이번 기록은 공식 마라톤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인 세계 신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마라톤 역사상 '2시간 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전까지 이름을 기억하는 외국인 마라토너는 한 명밖에 없다. 아베베 비킬라(1932~1973)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인데 맨발로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는데 기록은 2시간15분16초였다. 이후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운동화를 신고 재차 세계 신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기록은 2시간12분11초였다. 1960년 맨발의 아베베로부터 올해 킵초게까지 마라톤의 인간 최고 기록은 약 60년간 15분 단축됐다. 60년간 15분 단축은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참 어려운 과정이구나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시간으로 따져서 너무 느리다고 볼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2시간 안에 43.195㎞를 완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기록을 깨는 추세가 느렸던 데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했다. 추세가 너무 느리다 보니 멈춰 선 것으로 판단했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도 수십 년간의 실패과정에서 꿈을 지키거나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2시간의 벽이 깨질 수 없다'는 나의 예단은 틀렸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노력이 15분을 단축하기 위해서 이어졌다.

약 60년간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음을 몰랐고 애써 보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러했다면 진보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화두 중 하나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 정치적 측면에서 다소 극단적인 비관론이 위기론까지 만들면서 대중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비관론은 언제나 낙관론보다 좀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비친다. 왜냐하면 과거의 수치와 보이는 자료에만 근거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큰 편이다. 더욱이 성장 속도가 느려진 탓에 누구의 눈에도 앞으로 한국의 상황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몸담은 금융시장,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예상했던 것보다 느린 속도에 지쳐서 기대보다는 위기감만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질 자세는 정해져 있다. 멈춰져 있을 것 같지만, 느리더라도 진보하고 있는 힘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선의 폭이 미약하고 시간이 길어져서 답답하더라도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미ㆍ중 무역갈등으로 빚어진 세계 경기의 침체에도 플러스 성장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되는 이유다. 벌써 기억에서 멀어져 있겠지만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의 성장이 구조조정과 함께 탄탄해지고 있다는 점도 놓치면 안 된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태도다. 한국 경제가 아시아시장의 회복과 함께 재상승하는 시점에 내가 놀라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진보에 대한 믿음과 자세다.

남동준 텍톤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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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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