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당선자가 사라졌다. 2006년 5월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시 금정구의원 선거에 대한 얘기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 A씨가 보이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입장에서는 당선증을 전할 대상이 사라진 셈이다. 결국 당선자 부인이 당선증을 대신 받았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다.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이뤄졌던 2006년 5월16일에도 A씨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후보 등록은 가족과 선거운동원들이 대신했다. 선거 절차의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 후보자가 사정이 있다면 다른 이가 등록을 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A씨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금정구 유권자 누구도 A씨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물론 후보자 명함을 받거나 악수를 나눈 사람도 없다.
단 한 번도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던 A씨가 당선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금정구 의회 선거가 느슨하게 치러졌기 때문일까. 상황은 정반대다. 당시 금정구‘마선거구’에 출마한 구의원 후보들은 A씨를 포함해 10명에 이른다.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후보 1명과 야당인 민주노동당 후보 1명, 5명의 무소속 후보 그리고 3명의 한나라당 후보였다. A씨도 한나라당 후보 3명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선거는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졌고 금정구마선거구에서만 3명의 구의원을 뽑았다.
보통은 특정 정당 표 분산을 막고자 1명만 출마하는데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3명의 후보를 냈다. 흥미로운 대목은 10명의 후보 중 한나라당 후보가 1~3위를 휩쓸었다는 점이다. A씨는 3등으로 당선자가 됐다.
A씨가 후보 등록 때부터 선거운동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음에도 당선된 것은 특정 정당 몰표, ‘묻지 마 투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금정구의회 선거 이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한나라당의 싹쓸이 당선이 아니었다.
A씨는 후보 등록을 할 때도, 선거운동을 할 때도, 물론 선거 당일에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이 금정구의원 후보자로 등록하고 당선자가 됐다는 얘기다.
2006년 6월10일 A씨를 둘러싼 의문이 풀렸다. A씨는 한나라당 후보 등록 전인 5월12일부터 실종상태였다. 김해경찰서는 6월10일 야산에서 숨을 거둔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5월1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숨을 거둔 지 한 달가량 시간이 흐른 셈이다.
생존하지 않은 인물을 금정구의원 후보로 등록시키고 당선까지 시킨 상황, A씨 후임자 선출을 둘러싼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A씨 다음의 득표율을 기록한 인물에게 금정구의원 자격을 부여해야 할지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할지를 놓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유령투표’ 사건은 법원의 판단을 구해야 했다. 부산고법 제1특별부는 4위로 낙선한 B씨가 금정구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낸 A씨 당선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부산고법은 판결문에서 “금정구선관위는 투표 이후 당선인 결정 전까지 사망 사실을 발견하지 못해 (A씨에 대한) 투표를 유효투표로 볼 수밖에 없고 선관위가 (A씨를) 당선인으로 결정한 것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를 당선인으로 결정한 것은 적법하다는 판단이다. 4위를 차지한 B씨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재선거를 통해 새로운 금정구의원을 뽑아야 한다는 게 법원 판결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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