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빨간 피터'도 함께 돌아왔다

다시 문 연 '삼일로창고극장'

[사진=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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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관객들은 원숭이 분장을 하고 뭔가 절규하는 듯한 포스터 한장에 이끌렸다. 40여 년 세월도 뛰어넘었다.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1977)이 '빨간 피터들'(2018)로 돌아왔다.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발원지 '삼일로창고극장'이 지난 22일 2년 8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1975년 명동성당 옆 언덕길 위에 개관한 이후 수많은 젊은 연극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이번이 7번째 개관이다. 수난이 잦았다.서울시는 2013년 이곳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지난해에는 공연장으로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건물 소유주와 10년 장기임대계약을 했다. 운영을 맡은 서울문화재단 주철환(63) 대표도 이 극장에 얽힌 추억을 아시아경제에 소개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고, 배우 추상미 씨의 아버지 추송웅 씨가 연기한 모노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어요. 대학생이 그거 안 보면 예술 소양이 없다고 했을 정도죠. 그 추억이 아직 살아있어요."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사진=서울시]

그는 "창고극장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이 있어요. 창고가 극장이 된 건 기적이지만 극장이 창고가 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이 유서깊은 소극장을 다시 살려 '예술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한다'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다.1977년 이 극장에서 초연한 빨간 피터의 고백은 소극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막을 올린 지 4개월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연극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추송웅(1941~1985)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1917)를 바탕으로 기획, 제작, 연출, 연기 등 전 과정을 직접 맡았다. 연극 인생 15년을 기념한 작품이었다.극장과 함께 잊혀진 듯했으나 예술은 길었다. 건축가 함성호(55)는 이 작품을 계기로 시인이 됐다. 그는 재개관을 기념한 '창고포럼'에 나와 "그 연극에, 배우에, 분장에 매료됐어요. 연극이 끝나고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도 저런 걸 하고 싶다'란 생각에 집에 돌아가 글을 쓰기 시작했구요. 역시 모노드라마였고, 사람들에게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다 죽는 파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1990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이제 후배들의 차례다. 삼일로창고극장은 29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빨간 피터들' 연작 공연을 한다. 빨간 피터의 고백과 '추송웅 연구'(1992)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현 시대에 '배우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녹여냈다. 1인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연출가와 배우 각각 네 명이 다른 방식으로 공연한다. 삼일로창고극장의 실험정신이 읽힌다.첫 작품은 '추ing_낯선 자'(29일~7월 1일)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의 핵심인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집중했다. 연출가 신유청은 "원숭이 한 마리는 타자이고, 다수의 관객은 동일자"라면서 "현대사회의 과잉 생산과 소통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타자와 그를 바라보는 동일자의 시선, 그리고 동일자들의 잃어버린 오리지널을 향한 막연한 갈망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했다.김수희가 연출한 'K의 낭독회'(7월 6~8일)는 작가를 지향하지만 생계 문제에 부딪힌 이 시대 예술가의 현실을 드러낸다. '관통시팔'(7월 13~15일)을 연출하고 출연하는 안무가 김보람은 추송웅이 모노드라마를 통해 어떻게 관객들을 사로잡았는지에 집중해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판소리-어느학술원에의보고'(7월 20~22일)에서는 연출가 적극이 배우의 연기술 자체를 보여준다.우연(47)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은 이 극장의 실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극장의 사이즈(규모)보다 어떤 작품을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향수를 느끼기 위한 관객 뿐 아니라 미래의 젊은 관객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엄선해서 올리겠다"고 했다.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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