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며늘아기에게/나태주

며늘아기야, 너는 우리 집에서 한 사람밖에 없는 이씨다. 우리 집안에는 너처럼 한 사람밖에 없는 김씨가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너의 시어머니. 어느 날인가 앞으로 내가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거나 세상에 없는 날이 오면 이 김씨를 좀 부탁하자. 너도 한 사람밖에 없는 이씨니까 이 김씨를 좀 돌봐 다오. 이 김씨는 말솜씨도 좋지 않아 이렇게 저렇게 말을 둘러댈 줄도 모르고 속마음을 숨길 줄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작은 말이나 사소한 일에 마음의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다. 몸집이 통통하고 그럴 듯해서 튼튼한 것 같지만 그 반대인 사람이다. 말도 조심조심하고 작은 일에 신경 써서 챙겨 주면 어린아이처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란다. 이씨야, 부디 이담에 내가 없을 때 이 김씨를 네가 좀 보살펴 다오. 친구처럼 이웃처럼 나이 든 언니처럼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내가 보고 겪은 바로는 고부 사이는 의외로 돈독하다. 앞 문장에서 '의외로'라는 말은 절대 그럴 수 없는 관계라는 통념을 못내 부둥켜안고 뱉은 것이니 부디 혜량해 주길 바랄 따름이다. 여하튼 뜻밖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통할 때가 있는데, 그 대부분은 같은 성씨를 나누어 가진 남자들 때문이다. 그 까닭이야 덧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고 게다가 나도 그 남자들 가운데 하나라서 그저 민망하고 미안하기만 하다. 이 지면을 빌려 안동 김씨와 전주 이씨 집안에 머리를 숙여 죄송함을 표하니 이 또한 살펴 헤아려 주길 구할 뿐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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