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슬기나기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MBA 과정 학생들이 15일(현지시간) 하노이시 바딘구에 있는 HATCH의 공유오피스를 방문해 입주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토론하고 있다.
[하노이(베트남)=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이 나라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아이디어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년 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깜짝 방문으로 고조됐던 베트남 내 스타트업 열기는 이제 '경제 수도' 호찌민을 넘어 하노이로 번지는 모습이다. 연간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젊은 인구 구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해외 투자가들의 뜨거운 관심까지. 무엇보다 스타트업과 '공유 오피스'로 대표되는 베트남 창업 생태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꼭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베트남 최대 액셀러레이터 베트남실리콘밸리(VSV)의 린 한 최고경영자(CEO)는 "베트남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찬 생태계를 갖춘 곳이 됐다"며 "핀테크(금융+기술) 등 외국계가 진출할 만한 분야가 너무 많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계 투자경영컨설팅사 KIMC의 테드 김 대표는 "개인 스타트업 1번지는 호찌민이지만 최근 주목받는 곳은 하노이"라며 "하노이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이들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 간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진출 가능성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하노이에 기반을 둔 현지 액셀러레이터 하치(HATCH)가 매년 개최하는 데모 데이에는 1만달러의 지원과 6개월간의 전문가 컨설팅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4000여명씩 몰려들고 있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종 발표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률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호찌민에서 시작해 실리콘밸리에 입성한 영어 발음 교정 스타트업 ELSA, 러시아 벤처의 투자를 끌어낸 현지 대표 검색 엔진 스타트업 꼭꼭(COCCOC)과 같은 '베트남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다.스타트업 관계자들이 공유오피스 공용공간에서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고 있는 모습
◆IT 강점 갖춘 韓기업 진출 유리…"벤처캐피털 투자도 활성화해야"= 현지에서는 향후 한국계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린 대표는 "IT 등을 갖춘 한국 기업이 진출하기에 여러 가지로 유리한 상황"이라며 "수요는 있지만 현지에서 기술 개발이 어려운, 기술을 갖고 진출해야 하는 영역이 주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원 대상 선정 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창립자의 의도와 의지, 아이디어 등을 꼽았다. 또 다른 액셀러레이터인 HATCH의 이사회 멤버 에런 에버하트는 "한국은 아시아 문화와 자유시장경제, 미국식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데 이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IT, 핀테크, 문화, 관광 등의 분야가 특히 한국 스타트업의 강점 분야로 꼽힌다. 쇼핑, 의료, 교육 등도 이른바 '비어 있는' 시장이다.최근 2년간 현지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갓 대학을 졸업한 25~30세 청년층이 대다수이던 창업시장에 10년 이상 근속 경력이 있는 첨단 기업 출신 경력자들이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베트남시장이 청년층보다 오히려 전문 기술과 노하우, 실패 경험을 갖춘 중ㆍ장년 퇴직자에게 새로운 성공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른 은퇴와 불안정한 제2노동시장 등이 숙제인 한국 정부로서도 이를 정책적으로 활용,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일본ㆍ싱가포르 등에 황금시장을 뺏기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최근 국내 금융사의 베트남 내 5성급 호텔 인수를 성사시킨 테드 김 대표는 "베트남의 스타트업시장과 증시는 욱일승천의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 둘을 연계한 한국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어렵다"며 "5만달러, 10만달러 투자도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 시장을 다른 아시아 펀드들에 뺏기고 있냐"고 꼬집었다. 변 대표는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한 후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제약이 많았다"며 "베트남 진출 시 한국 법인 모회사가 100% 소유하고 모회사가 엔젤펀드 등 한국계 투자를 끌고 오는 형태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현지 관계자들은 베트남 진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길게 내다보는 인내심과 시장 이해에 기반한 글로컬라이제이션(세계화와 동시에 현지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베트남 투자자문사 VIETBID의 응우옌 탄 하 대표는 "베트남에서는 아직 행정 실무 속도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해 예상 기간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계획 단계부터 긴 기간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HATCH의 닷 대표는 "제휴 관계에 주력하라"며 "창업은 언제나 위험하지만, 현지 시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투자는 훨씬 덜 위험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용어 설명◇-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을 발굴해 초기투자를 진행하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경영자문, 인프라, 후속 투자자 유치 등을 도와주는 곳이다. 약 3~6개월에 걸친 지원 프로그램이 끝나면 투자자를 상대로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데모데이 행사를 마련해준다.하노이(베트남)=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