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교실에서 퇴출된 '재밌는 급훈'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성공해야 저 여자가 내 여자다’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ㆍ부인 직업(또는 얼굴)이 바뀐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학교에서 명문대 진학이 최고의 가치라고 부르짖던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쓰던 소위 ‘재밌는 급훈’들이다.이런 급훈이 통용되던 시절 교사들은 “대학만 가면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한 경쟁 속에 약자는 한 없이 비하당하고, 강자는 추앙받았다. 그 시절 인권ㆍ인성이란 가치는 교과서 속 학습 목표로 제시되는 단어에 불과했다.요즘엔 재밌는 급훈이 ‘반(反)인권 급훈’으로 불린다.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학교에도 스며든 모양이다. 공부보다 인성을, 경쟁보다 협동을 강조하는 교육이 주를 이룬다.서울 강서구 화곡고등학교 3학년 김모(19)군은 16일 “장난삼아 재밌는 급훈을 쓰자는 의견이 나오면 다른 학생들이 바로 반박한다”며 “우리 반 급훈은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이다”고 했다. 인근 덕원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5)양 반의 급훈도 ‘사랑하며 배우며’다.교사들도 달라졌다.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에 재직 중인 김모(40)교사는 “학기 초 급훈을 정할 때 여성을 비하하거나 외모ㆍ학벌 지상주의를 강요하고, 특정 직업을 천시하는 등의 표현은 배제하고 있다”며 “우리 반은 링컨의 명언(항의해야 할 때 침묵하는 죄가 겁쟁이를 만든다)을 급훈으로 정했다”고 했다.최순종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공동체 의식 등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교육의 본질이 급훈에 담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새 학기 시작 전 불어 닥친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 열기가 학교 현장도 ‘확’ 바꾸고 있다고 한다. 김 교사는 “아직도 일부 교사 중엔 인권감수성과 젠더감수성이 부족한 교사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학생들 앞에서 언행을 매우 조심하고 있다”며 “여학생들에게 뚱뚱하다ㆍ날씬하다 등의 표현을 잘못 쓰면 학생들 사이에서 난리가 난다”고 최근의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미투가 교육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반갑기만 하다.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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