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끝/김병호

땅에 스몄던 그림자가 증발하다 맞닥뜨린 과포화의 경계, 거기서 꽃핀 먹장구름은절망의 살얼음을 딛고 선 떨리는 발끝이다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를 가진 뽕나무 지나자 시선마저 증발하는 도로의 끝닿은 곳이 끝이라 믿고 쓰러진 시선의 무덤, 무 뽑은 자리허공의 젖무덤인 줄 알았던 꺼진 봉분은, 아니 땅의 자궁이다 다시 꽃이다잠 속을 꽉 채운 안개에 휩쓸려그렇게 나 안개의 끝이 되어미친바람의 창끝 되어 소나기 사이를 휘젓던 아침손가락이 맺은 핏방울 하나겨울 하늘과 포개어 그물맥으로 먼 시간을 겨눈 마지막 이파리붉은 씨앗 맺힌 혀끝맨 끝은흔들리는 맨 끝은 모두꽃이다■살다 보면 흔들릴 때가 있다. 우유부단해서이거나 욕심에 휘둘려서가 아니라,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그저 흔들릴 때가 있다. 나무처럼, 겨울나무처럼, 한겨울 속을 맨살로 버티는 나무처럼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어쩔 길이 없어서 다만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 흔들린다는 것은 실은 혼신을 다해 견디는 것일 것이다. 이를 사리물고 주먹을 꼭 쥐고서 말이다. 어쩌면 꽃은 그런 흔들림, 견딤의 "맨 끝"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다 멈추거나 견디다가 슬쩍 놓아 버린 자리가 아니라 도대체 헤어날 길이 없었던 심연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꽃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저마다 최선을 다해 피는 까닭은 그런 심연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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