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에서 발견된 '조란탄', 조선시대 크레모아?…한번에 400발 동시발사

12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공개한 명량해협에서 발굴된 조란탄 모습(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실전에 쓰였던 산탄 무기인 조란탄(鳥卵彈)의 실체가 명량해협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조란탄은 당시 해전에서 근접전에 쓰던 대량살상용 무기로 철이나 돌로 만든 지름 2.5cm 정도의 탄환이다. 대구경 포였던 천자총통(天字銃筒)의 경우에는 많게는 400발 정도를 넣고 한번에 발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2일, 올해 5월 시작한 명량해협 수중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면서 이번에 발굴된 조란탄의 모습도 함께 공개했다. 발굴된 조란탄은 돌을 둥글게 갈아 만든 지름 약 2.5㎝ 크기로 2012년 이후 모두 5차례에 걸쳐 진행된 수중탐사에서 이번에 최초로 나온 것이다.조란탄은 조선수군이 화약 20냥을 잰 지자총통으로 300발가량을 한꺼번에 쐈던 둥근 공 모양 탄환이다. 새알처럼 생겨서 조란탄으로 불렸으며 돌이나 철로 제조하거나 철환 위에 납을 씌운 수철연의환(水鐵鉛衣丸)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전해진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도 "무수히 많은 조란탄을 쐈다"는 기록이 나온다.

KBS-CCTV 공동제작 팩츄얼 드라마인 '임진왜란 1592'에 등장한 총통 장전 모습. 작은 소형 수마석이나 조란탄 등 산탄을 층층이 수십발에서 수백발씩 장전한 뒤, 대형탄환을 장전해 한꺼번에 쐈다.(사진=드라마 '임진왜란 1592' 장면 캡쳐)

당시 조란탄은 해전에서 공포의 무기였다. 현대 대인지뢰 중 대량 살상용으로 쓰이는 크레모아 지뢰와 비슷한 무기였다. 적게는 50발에서 많게는 400발을 넣고 근거리에서 한꺼번에 쏘면 선상에 올라와있던 왜병들 상당수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당시 왜군은 중장거리에서 사격전을 벌일만한 대구경 포가 없는 상황이었고 근거리에서 조총을 쏘거나 배를 이어붙여 백병전을 벌이는걸 장기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갑판 위에 올라와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란탄은 매우 적절한 무기였다. 서양에서도 비슷한 무기가 있었는데, 보통 '포도탄(Grapeshot)'이라 불리던 산탄이다. 상대 함선의 갑판에 맞춰 쏠 경우 일시에 많은 적군을 소탕할 수 있었기에 19세기 초 해전까지 매우 애용됐다. 당시까지는 별도의 폭발력이 없는 탄환을 사용하다보니 대함무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인살상무기의 장점은 배를 나포하기 쉽고 나포한 배를 수리해서 아군 전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조란탄은 일본 함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이가 높고 크기가 컸던 판옥선을 일종의 방어기지처럼 활용하면서 백병전을 준비중인 왜군에 산탄을 쏘는 방식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는 발사시 대포 내부에 균열을 줄 수 있는 돌로 만든 석환이나 완전히 철로 만든 철환보다는 철환 위에 납을 씌운 수철연의환을 쏘는 것이 좋지만 전시 여러가지 제반상황 악화와 시간적인 문제로 급히 돌을 깎아 석환을 만들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디지털뉴스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