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 딜레마에 빠진 재계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헤이애덤스 호텔에서 열린 우리 참여 경제인과의 차담회에서 경제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허창수 GS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이사,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오는 27~28일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의 간담회를 사흘 앞두고 재계가 '육하원칙'의 고민에 빠졌다. 청와대에서 불쑥 "만나자"고 제안한 데 대해 누가 참석해야 할지, 어떤 형식이 될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초 재계는 여름 휴가 이후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터라, 예상보다 빠른 만남의 배경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통을 하자"는 취지의 간담회가 너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는다. 한 대기업 임원은 "대표이사가 갑자기 각 부서 임원들과의 단톡방(단체카카오톡방)에 올린 쇼트 노티스(short notice ㆍ촉박한 통보)를 본 느낌"이라면서 "갑작스런 공지에 다들 읽음으로 표시는 됐지만 누구도 답변 글을 올리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청와대와 기업의 동상이몽재계는 이전과 다른 간담회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너무 갑자기 정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재계 관계자는 "간담회가 사흘 앞으로 왔는데도 오늘(24일) 오전까지 상의로부터 어떤 요청도 정식으로 받지 못했다"며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27,28일은 하계휴가 시즌인데다 대다수 기업의 총수나 경영진의 스케줄은 최소 한달 전에 이미 정해진다. 총수들의 경우 대체로 여름휴가 중 국내에 체류하며 사업구상에 나선다. 반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2,3일의 짧은 휴가도 반납하고 국내외 사업장을 돌거나 정상업무를 본다. '누가'와 '언제'가 정해질 때까지 그룹 총수나 전문 경영인들은 모든 일정을 비워놓고 '비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기업의 또 다른 고민은 '격'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다. 내심 그룹 총수의 참석을 바라지만, 총수가 부재중이거나 불참이 불가피한 그룹에서는 총수와 그룹을 대리하는 경영진을 물색해야 한다.
7월 18일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자리 15대 기업 초청 정책간담회' 시작 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뚜기를 보니 '왜'와 '어떻게'가 더 걱정청와대는 이틀에 걸쳐 한번에 7,8명의 기업인과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자는 생각이지만 재계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중견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참가하는 오뚜기의 경우 ▲상속세 완납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정규직 고용을 늘려온 데다 ▲상생협력 ▲가격인상 억제 등에서 모범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오뚜기의 참석은 결국 "대기업들이 오뚜기를 본받으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최저임금인상, 법인세·소득세인상, 탈원전정책 등에 우려를 제기하고 노동·금융·교육·공공부문 등의 규제개혁를 강조하고 싶은게 속마음"이라면서도 "특정기업이 주도해 문제를 제기하면 '괘씸죄'로 비춰지고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면 정부정책에 '집단반기'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어 대통령이 논란이되는 현안을 먼저 언급하지 않으면 허심탄회한 자리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대상 총수 1순위…格맞추느라 분주현대기아차에서는 고령의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 중 한 명은 참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SK는 방미경제인단에도 포함된 최태원 회장의 참석이 유력하다. LG는 구본무 회장 또는 구본준 부회장이 자리한다. 삼성전자는 재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온 권오현 부회장의 참석할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재판일정만 조정되면 참석할 의사가 있다. 김승연(한화)·허창수(GS)·정용진(신세계)ㆍ박정원(두산)·조양호(한진) 등 오너들도 참석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창수 GS회장은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CEO하계포럼이 26∼28일 제주에서 열려 포럼기간 중 청와대를 찾았다가 다시 제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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