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압박에 돌파구 의도…제재와 대화 놓고 한미간 갈등 가능성
"대화 국면 조성해야" 견해도[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미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북한도 핵ㆍ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수 있다"는 계춘영 인도주재 북한대사 발언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북한과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둬야 하는지 또다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북핵문제를 담당하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22일 주인도 북한대사 발언이 나온 후 진의와 발언이 나온 배경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단 대사 개인의 발언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북한 정권의 뜻인지는 불확실하다"면서 "배경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외교가에서는 계 대사의 발언이 나온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오토 웜비어가 송환 직후 사망하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분노가 높아졌고, 중국은 미국과 외교안보대화를 시작했다. 특히 미중은 이번 대화에서 양국 기업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들과 거래하지 못하게 하기로 합의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수위를 또 한번 끌어올렸다.북한으로서는 미중 압박 사이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 핵동결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다.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북한으로서는 미중간 과도한 압력을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내용 측면에서도 북한이 한미, 미중간 틈새를 벌리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동결'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단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쪽에 방점이 찍힌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미 사이에는 북한과의 대화 조건을 놓고 미묘한 시각차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인식의 차이가 없다"고 밝혔지만 다소 뉘앙스의 차이는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핵동결이 된다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웜비어 사망 이후 강경자세로 돌아섰다. 특히 국내 보수진영도 북한의 핵동결을 조건으로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남남갈등마저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공조 뿐 아니라 한국내 보수진보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2일 국회에서 가진 '보수와 안보' 주제의 특강에서 "북한과의 대화는 핵동결 뿐 아니라 핵을 포기할 의향을 확인한 후에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북한이 미국의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인 것도 걸림돌이다. 우리 정부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최근 미국에서 가진 강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전략자산 축소' 등을 언급한 반면, 문 대통령은 북핵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연계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문 대통령이 특보 발언과 생각이 다른 게 아니라, 한미정상회담을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 인사가 핵과 미사일 동결을 언급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분명히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동안 핵과 관련해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북한이 '동결'이라는 단어를 꺼낸 게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김흥규 교수는 "북한 인사가 핵과 미사일을 동결할 의지를 내비친 것을 단순히 사적인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면서 "이 기회를 활용해 일단 상대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탐색적 대화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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