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통계가 주는 착시에서 벗어나야
▲기초과학연구원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통해 이익을 창출합니다. 적은 돈을 투자해 많은 이익을 내는 게 자본주의 기본 시스템입니다. 당연히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노동력은 많이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상황판까지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철폐에 나섰습니다. 상황판에 표시되는 숫자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일자리 비율이 올라가고 비정규직 비율이 떨어지면 그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각 영역에 맞는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합니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직원 현황을 보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천차만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IBS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첨병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입니다. IBS에 비정규직은 얼마나 될까요.IBS가 내놓은 두 개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해 살펴봤습니다. IBS 전체직원 819명 중 비정규직은 109명으로 약 13% 정도에 불과합니다.
▲IBS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황
IBS 직원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연구직, 행정직, 행정조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초과학을 다루다 보니 IBS는 연구단 중심으로 조직이 갖춰져 있습니다. IBS에는 28개의 연구단이 있습니다. 각 연구단에는 연구직과 행정직이 있습니다. 연구직의 비정규직 비율은 놀랍습니다. 567명의 연구직 중 비정규직은 단 1명에 불과합니다. '0%'에 가깝습니다. 연구단 행정직은 사정이 다릅니다. 연구단 행정직 138명 중 비정규직은 93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67%에 이릅니다. 행정조직은 114명중 15명이 비정규직으로 그 비율은 13%에 불과합니다. 전체조직으로 본다면 비정규직 비율이 13%에 불과한데 연구단의 행정직의 경우 상대적으로 67%에 이를 정도로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연구직의 경우 비정규직이 0%에 불과한데 이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착시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BS 연구직의 경우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영년직과 영년직 트랙, 비영년직 트랙입니다. IBS 측은 "영년직은 별도의 고용계약 갱신 없이 65세까지 임용되는 인력을 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영년직은 영년직 트랙 연구위원 중 영년직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영년직 트랙은 채용 후 일정 조건에 도달되면 영년직 심사대상이 되는 인력을 말합니다. 반면 비영년직 트랙은 영년직 심사 비대상자를 일컫습니다. 쉽게 말해 영년직과 영년직 트랙은 정규직인데 비영년직 트랙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IBS를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에 해당된다는 이야기입니다.
▲IBS의 비영년직 트랙 인력은 459명에 이른다.
실제 비영년직 트랙 연구직은 5년 계약이 끝나면 IBS를 떠나야 합니다. 비영년직 트랙에 있는 IBS의 한 연구원은 "3년 계약을 하고 추가로 2년을 더 계약할 수 있다"며 "5년 안에 영년직 트랙으로 가지 못하면 IBS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류상으로 정규직에 포함돼 있는 비영년직 트랙 연구직은 사실 비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현황을 판단해 계산을 해 보면 IBS 연구직의 비정규직 비율은 81%에 이릅니다. 전체 연구직 566명중 비영년직 트랙 인력은 459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초과학은 짧은 시간 안에 연구 성과를 내놓기 힘든 분야"라며 "긴 시간동안 연구해야 하는데 5년의 연구원 기간이 끝나면 떠나야 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현재 시스템은 안정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IBS에서 5년을 경험한 뒤 국내 다른 연구소나 혹은 대학으로 갈 수도 있다"며 "한국에서는 아직 이 같은 흐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IBS에서 연구원 생활이 끝나면 국내에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외국으로 떠나는 게 대부분이라는 설명입니다. 이와 관련 IBS 측은 "IBS가 기초과학 분야에서 디딤돌 역할을 하기 위해 비영년직 트랙을 만들게 된 것"이라며 "보기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젊었을 때 좋은 연구 환경과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과학계 비정규직 문제는 칼로 무 자르듯 단칼에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숫자에만 매몰되면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데 특정 영역의 독특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홍 박사는 "과학계에서 가장 좋은 시스템은 연구소 등에서 포스닥으로 충분한 수련을 받고 다른 연구소나 기업체로 이동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과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라고 덧붙였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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