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밥값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목은 목숨이다. 목이 달아났다면 곧 죽었다는 뜻이다. 그 말을 상징으로 했다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라는 뜻이고. 왜 안 그렇겠는가. 목이 곧 숨길이요 밥길인데. 그리하여 살아 있는 한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겠는가. 인간으로서 형편이 곤궁하여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때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느냐'고 하지 않던가. 밥이란 정성 가득한 음식으로서 인간의 영혼을 응축한 에너지원이다. 벼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리는 안다. 이어령은 우리 벼 기르기를 말하되 이렇게 하였다.  "서양에서는 곡식을 두 배로 수확하고자 할 때 경작지를 두 배로 늘린다. 우리는 벼를 두 배로 걷기를 구하며 같은 논에 정성을 두 배 들일 작정을 한다."  새 대통령이 나왔다. 자리가 비어 있었기에 당선이 확정된 날 바로 일을 시작하였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단숨에 바뀔 리는 없다. 갑자기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고 부패를 일삼는 무리들이 알아서 손을 들고 투항하지는 않는다. 기득권이란 그 뿌리가 깊어 단숨에 뽑아내기 어렵다. 기괴할 정도로 재생ㆍ복원력이 강해 일부분을 다쳐도 쉬 죽지 않는다. 오히려 저항이 더욱 거셀지도 모른다. 천생 선비라는 새 대통령이 어찌 손을 쓸지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눈길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투표하던 날 촌로에게서 들은 말이 귀에 박혔다. "밥값이야 하지 않겠는가?" '밥값'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런 표현이 외국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밥'은 서양의 빵과 같지 않다. '밥'을 소재로 삼아 쓴 수많은 시들이 그 남다름을 증언한다. 밥이 남다른 만큼 시도 남다른지는 모르겠다. 시인이 밥에 대해 쓸 때, '나중에 똥이 될 것을 번연히 알면서 이런 식으로 쓰나' 싶은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밥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그곳에 재주가 부족함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갸륵한 정성을 모두 기울이어, 불가의 수행자들은 이렇게 비나리한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과 정성과 무한한 노고의 공덕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로운 이 음식으로 이 몸 길러 몸과 마음 바로 하여 바르게 살겠습니다. 공양을 베푸신 임들께 감사드리며 주는 기쁨 누리는 삶이기를 서원하며 감사히 이 공양을 들겠습니다.  모름지기 쌀 한 톨에 삶의 이치가 깃들이며 솥을 데우는 것은 장작이 아니라 체온이다. 그러기에 고은은 썼다. "절하고 싶다/저녁 연기 피어오르는 먼 마을."(저녁 무렵) 한때 승려였던 시인이 지나가며 바라본 먼 마을에 파릇파릇 피어오르는 저 연기는 필시 밥을 짓는 연기일 터이다. 상상하라. 아궁이 앞에 앉은 아낙의 혼신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얼굴들. 그러기에 가족이 아니라 거룩한 '식구'이니라. 밥의 우주가 이러하건대, 어찌 '밥값'이 쉬우랴.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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