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왼쪽)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정몽규 회장의 FIFA 평의원 당선은 한국축구가 행정과 외교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축구계의 중심부로 진입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지난 1994년부터 FIFA 부회장이자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2011년 집행위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한국축구의 국제외교 역량은 급속히 약화됐다.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에 선출된 정몽규 회장이 취임 초기부터 '축구외교의 영향력 재건'을 주요한 목표로 삼았던 것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 때문이었다.정몽규 회장은 위상 복원의 첫 단계로 2017년 FIFA U-20 월드컵의 한국 유치를 목표로 내세웠다. 대회 유치를 위해 FIFA와 AFC의 주요 임원은 물론, 세계 각국의 축구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며 인맥을 조금씩 넓혀나갔다. 2013년 12월 드디어 FIFA U-20 월드컵의 유치에 성공하면서 축구 외교의 재도약에 첫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정몽규 회장은 이어 2014 브라질 월드컵,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15 아시안컵 등에 잇따라 참석하면서 국제 축구계, 체육계 인사들과의 스킨십을 확대했다.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2015년 4월 아시아 출신 네 명을 뽑는 FIFA 집행위원 선거에 처음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열세 표를 얻는데 그쳐 실패하고 말았다. 정몽규 회장은 선거 후 "국제축구계의 뉴페이스로서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여건이 된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다"며 재기의 의지를 밝혔다.이후 AFC 부회장 겸 집행위원, AFC 심판위원장, 2019 아시안컵 조직위 부위원장 등에 차례로 선임되며 외교 역량을 강화했다. 또 평소 친분이 있던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새로 당선되자마자 한국으로 초청해 입지를 다졌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5월 추가 위원 세 명을 뽑는 FIFA 평의회 위원에 다시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중도에 출마를 포기했다. 대한체육회 요청으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단장에 위촉되었는데, 선거 운동에 집중해야 할 시기와 리우 올림픽 대회 기간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이 따랐다. 당초 9월에 열리기로 했던 평의원 선거일정이 아시아 각국의 요청으로 2017년으로 연기됐다. 재도전에 나선 정몽규 회장은 지난 1월 후보 등록을 마치고 일찌감치 선거 운동에 나섰다. 4년 동안 형성한 인적 네트워크와 아시아 축구발전을 위한 비전과 진정성이 각국에 전달되면서 당선 가능성이 커졌다. 세 명을 뽑는 선거에 네 명이 출마해 당선 확률이 이전보다 한층 높아졌다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후보가 동시에 당선될 경우, 기존의 일본인 평의원과 더불어 한·중·일 동북아시아에 너무 편중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막판까지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선거를 며칠 앞두고 쿠웨이트 출신 후보가 사퇴하면서 정회장은 마침내 FIFA 평의원 당선에 성공했다.2013년 대한축구협회장 취임 이후 정몽규 회장이 4년 동안 방문한 나라만 총 80개국. 면담한 세계 축구계 인사는 500여명에 이른다. 기업 경영(현대산업개발) 이외의 모든 시간을 축구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을 포함해 아시아는 방문하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나라들도 상당수 찾아갔다. 축구 발전에 대한 열정과 강인한 의지, 외유내강형의 성품, 그리고 빽빽한 국내외 일정을 거뜬하게 소화해내는 타고난 체력까지. 이 모든 것이 FIFA 평의회 진출의 밑바탕이 됐다. 정몽규 회장의 끝없는 도전이 4년 만에 열매를 맺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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