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59, 58, 57, 56, 55…." 5월9일 주요 방송사의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카운트다운.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초조함을 감추지 않는 눈빛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화려한 이미지로 치장한 방송사 자료화면이 지나가고, 드디어 오후 8시 대통령 당선 유력후보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감격의 기쁨을 감추지 않는 이들부터 '망연자실'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는 이들까지 그 순간의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5년에 한 번 찾아오는 시간,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17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전국 곳곳에 대선후보를 알리는 벽보와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평소에는 먹고 살기 바빠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도 대선 만큼은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대선 결과를 둘러싼 궁금증은 인간의 본성이다. 대선 여론조사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의연한 성격이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여론조사 결과를 접할 때는 일희일비(一喜一悲) 갈대의 마음이다. 흡족한 결과가 나오면 여론조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면 음모론에 심취하는 일의 반복이다. "그래, 여론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어." "표본 샘플링에 문제가 있어, 의도가 개입된 것 같아."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곧바로 품평회가 이어진다. 전문가 뺨치는 일반인 능력자도 수두룩하다. 여론조사를 둘러싼 삐딱한 시선은 그동안 누적된 충격이 반영된 결과다. "여론조사에서 ○○○ 후보 45.8%, 제가 28.5%로 보도가 됐습니다.…이 숫자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이것이 왜곡인지 아닌지 제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지난해 3월23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 정치인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실제 선거를 20일가량 앞둔 시점에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후보자 당사자는 물론 지지자들도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특정 후보의 낙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될 사람 밀어주기 흐름이 형성될 수도 있다. 여론조사는 여론을 계량화하는 '수치의 과학'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결과 발표를 통해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얘기다. 여론조사의 숫자를 꼭 기억해 달라며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호언장담한 이 인물의 선거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4월13일 서울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52.6%를 득표했고, 상대 후보는 39.7%를 얻는 데 그쳤다. 여론조사는 실제 투표결과와 정반대였다. 불리한 여론조사를 이겨내고 승리를 일궈낸 인물은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여론조사 수치대로 결과가 나왔다면 국회의장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여론조사 왜곡의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사람 마음을 100% 읽어내는 '속마음 감별기'가 등장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 신기한 물건이 등장할 리도 없지만, 그런 게 발명된다고 해도 여론조사의 한계는 해소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성으로는 A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투표소에 가면 B후보 쪽으로 마음이 가는 심리, 선거를 둘러싼 인간의 복잡하고 오묘한 마음을 완벽하게 계량화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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