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편집위원
최근 암울한 인구 통계가 속속 발표됐다. 혼인건수, 출생아 수, 합계출산율 모두 암울하기 짝이 없다.우선 혼인건수가 급감했다. 지난해 28만2000건으로 전년 대비 14.7% 감소했다. 이는 사망건수(28만1000건)와 거의 비슷하다. 1970년(25만9600건) 이후 최저치라고 한다. 2011년 32만9000건이던 혼인 건수는 계속 줄어 6년 만에 4만여건 준 것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사망건수 보다 적어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결혼하려는 청춘 남녀가 줄어든 이유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그 중에서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준 것을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800만명에 육박한 25~34세 인구는 지난해 673만5200명으로 감소했으니 그럴 듯한 설명이다. 출생아 수 통계는 더 암담하다. 혼인을 적게 하는 데다 기혼 부부가 출산을 기피하는 탓이다. 지난해 출생아는 40만6000명으로 40만명에 겨우 턱걸이했다. 역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7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라고 한다. 통상 혼인 건수는 1~2년 뒤 출생아수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혼인이 줄었으니 출생아수가 줄어들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1.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앞으로 출생아수는 30만명대로 낮아질 수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그간 수많은 대책을 세우고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했는데도 이런 참담한 결과를 마주하니 어이가 없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었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런데도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진단과 처방이 잘 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대선 주자들은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선 획기적인 출산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만 6세 이하 아동에게 월 10만~3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유아 아동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했으며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만 6~12세 아동에게 월 30만원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 일정 금액을 지원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높여보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 돈을 받는다고 해서 아이를 더 낳을까’라는 물음에는 쉽게 ‘예’라고 말하기 어렵다. 아동 수당은 왜 청춘 남녀가 결혼을 미루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지에 대한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약은 젊은이들이 결혼 적령기에 이를 때까지 부담해야 하는 학비와 주거비, 결혼 후 주택마련 비용, 육아비용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서울시내 사립 대학 등록금은 500만원을 넘는다. 원룸은 보증금을 빼고도 월 50만원 수준이다. 기숙사비도 만만치 않다. 괜찮은 곳은 월 40만원에 육박한다. 식비는 따로 내야 한다. 학생들은 학비와 주거비를 벌기 위해 천금 같은 공부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아야 한다. 그래도 빚을 지기 일쑤다. '금수저'와 '은수저'가 아닌 '흙수저' 출신은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한다. 서울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A씨는 2년 장학금을 받고 나머지를 아르바이트 등으로 충당했지만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졸업은 악몽이다. 높은 임금에다 안정된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청년층(15~24세) 실업률은 전년 동기 대비 0.6% 상승한 8.9%였다. 그러나 4년제 대졸 이상 실업률은 10.4%로 2.5%포인트 높았다. 이러니 빚을 갚는 일은 정말 힘들다. 취직을 한다 해도 결혼과 출산은 먼 훗날의 얘기다. 신혼집을 장만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가구당 평균 전세값은 4억1515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378만원 올랐다. 전국 평균 전세값도 2억2694만원이었다. 매매값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고양 등 수도권 도시라고 해서 값이 싼 것은 아니다. 2억원 이상은 손에 쥐고 있어야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다.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취직 5년 안에 결혼하거나 출산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돈 몇 푼 준다고 해서 청춘남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유력 주자의 공약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980년 대 이후 서울과 수도권의 허파인 분당과 일산, 판교 등지에 대규모 아파트를 건설하면서도 서울 아파트 값 준동을 막지 못한 국토교통부의 정책, 수천억 원의 자금을 쌓아놓고도 학생들에게 비싼 등록금을 물리는 일을 방치하는 교육부의 정책이 계속되는 한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장담한다. . 비싼 등록금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문제를 놔놓고 청춘 남녀에게 빨리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일이다. 대선주자들이여 진실로 우리나라와 경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문제의 근본 해법을 제시하는 게 옳지 않겠나.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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