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민낯](12)결혼은 원래 투기?…중세 왕들의 '결혼베팅'

카를 5세 초상화(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최근에는 경제적 문제로 결혼을 기피하는 'N포세대'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각각 학자금 대출을 끌어안고, 결혼 후 주택대출까지 안은 상황에서 출산으로 양육비 문제까지 겹친 신혼부부의 경제적 상황이 쉽게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시대, 유럽의 왕실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아주 열심히 결혼했다. 이제 갓 낳아 강보에 쌓인 딸을 시집보내는가 하면 시집갔다가 친정에 돌아온 딸을 곧바로 다른 집에 시집보내고 아들들도 여러 지역에 장가를 보내거나 중혼을 해서 최대한 인척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당시에는 이 결혼을 통해 인척관계가 형성되면 상대국의 왕위계승권에 대한 일정지분이 생기기 때문에 이 지분을 늘리기 위해 투기성 결혼에 나섰던 것. 만약에 상대국의 왕위계승권자가 모두 사망하거나 결격사유가 있어 국가에서 쫓겨나면 상대국의 왕관이 자신의 가문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생기며 이 경우 평화롭게 상대국을 병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형태를 보통 '동군연합(同君聯合·personal union)'이라고 칭하며 2개의 분리됐던 국가가 상속문제로 한명의 군주를 모시게 되면서 통합되는 형태를 의미한다. 특히 사실상 합병절차를 밟아 완전히 한 나라처럼 되는 경우를 물적 동군연합이라고 했으며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이런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결혼은 당시 왕실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베팅'이었다. 이 베팅의 최고 수혜자는 16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자 '유럽 최고의 행운아'란 별명이 붙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1500~1558)였다. 그의 선대들이 열심히 결혼을 한 덕분에 그는 앉아서 대제국을 상속받았다. 그는 서유럽에서 프랑스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들을 상속받아 합스부르크 제국을 건설했고 그의 제국은 오늘날 유럽연합(EU)의 형성에 사상적인 토대도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카를 5세가 받은 상속영토(사진=NAVER)

그가 상속받은 땅들은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에게서 상속받은 오스트리아, 할머니인 마리 드 부르고뉴에게서 상속받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알사스-로렌지방, 외할아버지인 페르난도 2세에게서 상속받은 아라곤, 발렌시아 등 스페인 동부와 나폴리, 시칠리아, 밀라노, 사르데냐 등 이탈리아 일부, 외할머니 이사벨라 1세에게서 상속받은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등 스페인 중부 전역 여기에 그는 이 막대한 영토를 기반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 나가 승리해 독일 전역도 지배하게 됐고 뒤이어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즈텍제국과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중남미 전역을 지배하자 그곳까지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 이후 그가 통치하는 스페인은 대항해시대를 열어 동아시아로 진출, 필리핀을 점령하자 자신의 아들 필립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의 이름을 필리핀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결혼으로 완성된 해가지지 않는 거대한 제국은 카를 5세가 사망 전 그의 여러 아들들을 각국의 왕으로 임명해 분할상속하면서 다시 쪼개지게 된다. 하지만 이 성공한 결혼에 대한 신화는 오랫동안 유럽 왕실을 지배했고 정략결혼이 판을 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정책을 두고 "어리석은 너희들은 열심히 전쟁을 해라. 우리 현명한 오스트리아는 결혼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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