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민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일본 엘피다는 반도체 기업 간 '치킨게임'을 견디지 못하고 2012년 2월 매물로 나왔다. 그해 하이닉스를 인수한 최 회장은 엘피다 1차 입찰에 참여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SK하이닉스를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로 키우기 위해선 경쟁사인 엘피다를 품에 안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3.2%, SK하이닉스가 23.7%로, 엘피다의 12%를 인수하면 삼성전자와 함께 확고한 2강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경영진 일각에서도 가격만 맞다면 도전하자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결국 이사회가 제동을 걸었다. 5월 열린 이사회에서는 2시간 가량의 격론 끝에 엘피다 본입찰(2차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고, 결국 엘피다는 미국의 마이크론에 인수됐다. 최 회장은 당시 이사회가 끝나고 "전략적으로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도 "인수합병(M&A) 기회가 있으면 적극 검토하겠다"며 추가 M&A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최 회장은 지난 한 해 동안 SK㈜를 통해서만 반도체에 1조2176억원을 투자했다. 인수합병하거나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총 5개 회사를 품에 안았다. 지난해 2월 SK머티리얼즈(구 OCI 머티리얼즈)의 지분 49.1%를 4816억원에 인수해 반도체 소재사업에 처음 뛰어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750억원에 SK에어가스 지분을 매입했고, SK트리켐과 SK쇼와덴코 설립에 각각 200억원, 210억원을 초기 투자했다. 23일엔 LG실트론 인수(6200억원)까지 확정지으며 반도체 영토를 넓히고 있다. 실적 역시 최 회장의 공격적인 반도체 투자 의지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삼불화질소(NF3) 세계 1위 업체인 SK머티리얼즈는 인수 후 분기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약 460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30% 이상 늘었다. 엘피다와 달리 최 회장의 의지로 인수를 밀어붙인 SK하이닉스는 이제 그룹의 효자 계열사가 됐다. SK에 편입된 후 연구개발과 시설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면서 안정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 편입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연구ㆍ개발비에 더해 3조원의 통 큰 투자도 계획한 상태다. 사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에 나서기 전만해도 반도체 문외한이었다. 하이닉스 인수에 도전장을 내면서 최 회장은 반도체를 공부했고 서울 모처에서 반도체 관련 스터디 모임을 가지며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물리학과 출신인 그는 반도체의 기본 원리는 물론 반도체 역사, 세계적 기술 동향 등을 공부했다. 이 모임에는 다양한 반도체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에 믿음을 실어준 최 회장의 뚝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SK의 반도체 사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남다른 반도체 사랑이 사업 확장, 투자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