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로엔그린' vs 베르디의 '맥베드'
2015년 프랑스 렌오페라극장, 카를로스 바그너 연출의 '로엔그린'공연사진. (제공 : 국립오페라단)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이제껏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어떤 집단을 혼란 속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끈 적은 없다. 반면 맹목적인 믿음과 무조건적인 복종은 더 큰 재앙을 야기했다." -오페라 '로엔그린'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48)"탐욕은 자연스럽게 악(惡)으로 연결된다. 탐욕과 악에 대한 불감증은 중독으로 나타난다. 이런 중독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끈다."-오페라 '맥베드'의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예술감독(69)시절이 하 수상하니 예술작품의 연출의 변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달 국내 대표 두 오페라단이 야심차게 준비한 두 작품은 같은 듯 다르다. 같은 해(1813년) 태어난 두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작품이 각각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바그너의 '로엔그린'은 바그너의 영원한 테마인 구원과 믿음을 이야기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선보이는 베르디의 '맥베드'는 욕망과 탐욕에 의한 파멸의 길로 관객들을 이끈다. 공교롭게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 두 고전은 각각 현대식으로 재구성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건넨다.◆정치적 혼란기에 찾아온 구원의 기사…바그너의 로엔그린'로엔그린'은 성배의 기사다. 기사는 억울한 누명으로 고통받는 여인, 엘자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다. 텔라문트 백작과 그의 아내인 마녀 오르트루트는 엘자가 영주가 되려는 욕심 때문에 동생을 죽였다고 모함한다. 백조가 이끄는 배를 타고 등장한 신비의 기사는 텔라문트와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엘자는 누명을 벗는다. 기사와 엘자는 결혼을 약속한다. 단, 기사는 결투에 임하기 전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말고 묻지도 말 것". 행복한 결혼식 날,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 엘자는 결국 금기의 질문을 하고, 기사는 자신이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이라고 밝히고는 엘자의 곁을 떠난다.이 작품은 바그너가 13년간(1848~1861) 스위스로 망명해있던 가장 힘들었던 기간에 완성했다. 당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1841)'과 '탄호이저(1844)' 두 작품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하던 바그너는 1848년 전제정치에 대항하는 3월혁명에 가담하는 바람에 고국 독일을 떠나 망명자 신세가 됐다. '로엔그린'은 그의 장인이기도 한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도움으로 1850년 8월28일 독일 바이마르 극장에서 초연돼 대성공을 거뒀다. 독일의 전통 신화를 끌어들여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드라마는 독일 관객들의 구미에 꼭 맞았다.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만들어진 점도 인기 요인이었다. 이 소식을 타국에서 들은 바그너가 "'로엔그린'을 객석에서 보지 못한 독일인은 나뿐"이라고 한탄했을 정도다. 후에 니체는 '로엔그린'을 "'너는 믿어야하며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리스도적 관념을 재현하고 있는 것뿐"이라며 비판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 역시 니체의 손을 들어준다. 그는 엘자의 의심이 합리적이며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대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엘자처럼 자기 꿈을 희생하면서 적시에 권력자에게 그가 진정 누구인지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특히나, 그가 순백의 백조를 타고 왔을 때 말이다"라고 강조한다. 국립오페라단 버전의 '로엔그린'은 중세 브라반트에서 현대사회로 작품의 배경을 옮겼다. 국내외 정치적 압박으로 붕괴 위기에 처한 나라가 무대이고, 세트는 현대 국회를 연상시킨다. 바그너 연출가는 "작곡가 바그너는 독일의 혼란을 위대한 예술로 해결하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심리적인 면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바그너 낭만주의 오페라의 결정판으로 꼽히는 '로엔그린'은 공연시간(인터미션 포함)만 네 시간 반이 걸리는 대작이다. 웅장하고도 화려한 음악을 위해 대규모 오케스트라(110명)와 합창단(90)이 투입된다. '딴 딴따 단'으로 시작하는 '결혼행진곡'이 바로 이 작품 3막에 사용된 '혼례의 합창'이다. 올해 한국인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의 성지'인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한 테너 김석철(42)이 '로엔그린'을 맡았다. 그는 "작곡가 바그너는 오페라가 사회 문제들을 계몽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런 점 때문에 바그너를 좋아한다"고 했다. 공연은 오는 16일, 18일, 20일 3일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2012년 독일 뤼벡 시립극장에서 맥베드로 공연한 양준모.
◆권력의 야망에 눈이 먼 한 인간의 비극…베르디의 '맥베드''맥베드'는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매료돼 만든 오페라다. 용맹한 장군이자 야심가인 '맥베드'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 예언을 전해들은 맥베드 부인 역시 욕망에 사로잡혀 남편을 부추긴다. "야망이 있는 영혼이여, 당신은 권력을 열망하는 맥베드에요. 하지만 당신은 사악해야져야겠죠? 권력의 좁은 길은 악행으로 가득하니까요" 결국 맥베드는 자신이 섬기는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베르디는 맥베드와 부인, 마녀, 이 세 가지 캐릭터의 세밀한 심리묘사에 집중한다. 당시 베르디는 대본작가에게 "이 작품은 정말 위대한 비극이다. 우리가 이걸로 대 걸작을 못 만든다 해도, 일상적인 수준은 피해보자"라고 했다. 베르디의 '맥베드'는 '로엔그린'보다 한 해 전인 1847년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페르골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특히 맥베드 부부의 이중창과 맥베드 부인의 몽유병 장면이 압권이여서 초연 당시 큰 성공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은 지금, '맥베드'의 대사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꿰뚫는다. 구자범 지휘자(46)는 "작품 속 마녀에서 우리 사회 권력층의 모습이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거울처럼 보인다"고 했다. 마녀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를 죽이려고 '배를 침몰시키자'고 하는 대목, 또 이들이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득의양양하게 합창하는 대목, '왕이 될 수 있다'며 맥베드 부인이 남편을 조종하는 대목, 왕을 암살하고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하는 맥베드 부부 등의 모습이 그것이다. 구 지휘자는 "이 작품은 맥베드의 파멸을 통해 결국 '권력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민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작품은 24~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 무대에 오른다.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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