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나합스토리' - 한강서 물고기 방생 행사를 벌이며, 굶주리는 세상에서 귀한 밥을 던져주던 여자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작가 김동인은 소설 ‘운현궁의 봄’에서 나합을 그리면서 아주 코믹한 풍경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른 바 시반일(施飯日) 에피소드이다. 오래 전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간 정난정이 거액을 주고 물고기를 사서 방생하는 행사를 벌였던 것을 흉내낸 것이다. 나합은 밥 20섬을 지어서 한강에 던져 물고기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이벤트를 벌인다. 한강에 배가 3척이 떴다. 맨 앞에는 악공(樂工)이 가득 탄 배였고, 두 번째는 밥을 실은 배, 맨 마지막 배는 하인들을 실은 배였다. 노를 저을 때 소리가 나자 나합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이렇게 말한다. “소리내지 마시오. 고기들이 놀라겠소. 가만가만 저어서 갑시다.” 그런데 이 행렬을 지켜보면서 뭔가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방금 풀어넣은 밥을 훔쳐내려는 배고픈 백성 둘이다. 깊은 강 속에서 겨우 반 광주리의 밥을 건졌으나 더 욕심이 나서 물밑을 헤매다가 하나는 죽고 하나는 겨우 살아난다. 이후 시반선에 탄 사람들에게 붙잡혀 곤장을 맞는다. “용왕님께 벌받을 놈들!” 나합의 분노가 터진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이 여인이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환상과 어리석음 속에서 살다가 갔다는 느낌도 든다. 과연 그랬을까. 나합의 죽음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그녀는 다만 썩은 권력을 대행한 허수아비였을 뿐, 시대를 살아가며 더운 숨을 내뿜었던 인간의 마을 속에선 지워져 있다. 나는 영산강 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녀가 한강의 물고기를 위해 방생하는 저 풍경에 삶의 어떤 희구와 갈증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인간들이 마리오넷같은 나합이 되어 왜 살고 왜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겅중거리는 것이 아니던가. 나주의 죽은 조개처럼 그 유난한 삶의 진실도 입을 꽉 다물어버린채 ‘나합’ 두 글자의 시니컬한 맛만 전한다.* 빈섬 스토리는, 후속작품으로 <조선의 '파우스트'로 불린, 천재 여성시인 이옥봉傳>을 연재하려 합니다. 계속해서 성원 바랍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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