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직후 영국 보수당의 해더 윌러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영국과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친구가 잘 싸웠다"는 글을 올리고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 396개 메달로 1위, 유럽연합(EU)이 258개로 3위, 나머지 국가가 320개 메달을 땄다는 그래픽을 올렸다. 올림픽 결과에 고무된 영국의 풍경에 EU대신 영연방이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영국과 과거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52개국 연합체인 영연방이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이후 영국의 정치ㆍ경제적 출구로 주목 받고 있다. 그동안 영국에서 영연방을 실감할 기회는 주로 스포츠와 문화 이벤트를 통해서였다. 스포츠에선 2014년 글라스고 '커먼웰스게임'(영연방 경기대회)과 2015년 영국 전역에서 열린 15인제 럭비 월드컵이 그런 기회였다. 에딘버러 페스티벌과 '런던 뮤지컬의 메카' 웨스트엔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영연방 공연물, 그중에서도 남아공 음악공연을 영국에 소개한 창구였다. 2000년대 한국에도 소개된 뮤직 퍼포먼스 '검부츠'(Gumboots), '우모자'(Umoja)에 영국 관객들이 먼저 열광했다. 런던 공연가의 남아공 열풍은 케이프 타운 오페라(CTO)가 이어 받았다. 2009년 가을, 이들은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로 영국 투어를 했고 2012년 남아공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생애를 다룬 '만델라 3부작'(Mandela Trilogy)으로 재차 영국을 찾았다. 템즈강 남쪽의 복합문화공간인 사우스뱅크센터는 8월 31일부터 오는 3일까지 '만델라 3부작'을 로열 페스티벌홀 무대에 4년 만에 다시 올리고 있다. 영연방 이슈가 점증하는 시점에 만델라의 화해 메시지를 공연물로 포용하는 영국 문화계의 저변을 살피기에 좋은 기회다. 만델라의 흔적은 지금도 런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템즈강 이북의 바비컨센터와 비교해 다문화에 개방적 자세를 취해온 사우스뱅크센터는 1985년, 만델라의 옥중 시절부터 이미 공연장 앞에 흉상을 세웠다. 조형물에는 "투쟁은 나의 삶"이라는 만델라의 주장이 적혀 있다. 2007년에는 영국 의회 광장 앞에 만델라 동상이 건립됐다. 제막식에 참가한 만델라를 앞에 두고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했다. 청년 시절 런던대로 유학 온 만델라가 활보했을 시내 도처에 그를 기리는 가로명이 제정됐다. 1988년, 스팅과 휘트니 휴스턴은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에서 만델라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념공연을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화 '우리가 꿈꾸던 기적, 인빅터스'로 1995년 남아공 럭비월드컵 우승 실화와 함께, 모건 프리먼의 연기로 만델라를 조명했다. CTO는 남아공 케이프 타운 대학 오페라 스쿨 출신의 재학생과 동문을 주축으로 1999년 창단된 오페라 컴퍼니다. 2016 시즌에는 '마술 피리' '카르멘' '살로메'를 소화한 정통 오페라단인 동시에, 해외 투어에선 오페레타와 뮤지컬과 유사한 음악극도 공연한다. 베를린 필하모닉(BPO)이 주관한 2012년 베를린 음악 축제에선 BPO 감독 사이먼 래틀이 CTO 합창단을 지휘했고, 오페라 연출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뉴욕과 비교해도 CTO 코러스가 세계 최고"라는 코멘트로 실력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켰다. 만델라 3부작은 일대기 가운데 투쟁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세 번의 시간적 배경을 각 막에 배치했다. 1막은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1930년대 트란스케이(Transkei) 지역에서 템부(Thembu) 부족으로 자란 사춘기를 그렸다. 2막은 재즈 타입으로 1950년대 요하네스버그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거물로 올라서는 여정이, 3막은 현대 오페라 스타일로 로벤섬의 유배 생활이 무대에 펼쳐졌다. 시기마다 다른 성악가가 만델라 역을 맡았다. 제작진은 탄탄하다. 아리아 작사에 능한 마이클 윌리엄스가 대본을 쓰고 재즈 파트는 마이크 캠벨, 오페라 풍의 곡들은 아카펠라 중창단 킹스싱어즈와 자주 작업한 피터 루이스 반 디크(Peter Louis van Dijk)가 편ㆍ작곡했다. 기본적으로 남아공 특유의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드럼을 공격적으로 사용하고 브로드웨이풍의 스윙이 이국 관객의 경계심을 해제한다. 형식은 오페라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뮤지컬 스타일이었다. 낭창 형식의 레치타티보 대신 뮤지컬풍의 대사가 아리아 사이를 채웠다. 오페라적 선율미를 느낄 공간은 3막에 잠시 등장했고 아리아와 대사 사이에 연결 고리가 느슨해지면서 장르적 한계가 노출됐다. 코믹 터치의 댄스신은 과장 일색의 쿠바 발레극과 큰 차별이 없었다. 작품성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만델라 3부작을 바라보는 영국 미디어의 시선은 부드럽다. 공연장을 꽉 채우는 케이프타운 오페라의 공명이 영국 정론지엔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은 만델라 정신의 또 다른 외침으로 투영됐다. 2012년 가디언과 8월말 웨일스 카디프 공연을 본 타임즈가 별 넷을 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델라 3부작을 상연한 사우스뱅크센터는 정기적으로 인도 예술 축제도 벌인다. 영국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안무가는 방글라데시계 아크람 칸이다. 영국 클래식계와 무용계 주류는 다문화로 영국 문화가 번성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은 결국 이민자 문제로 EU에서 나왔다. 만델라에 이어 2015년 간디 동상이 의회 광장에 건립됐다.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는 간디를 소재로 한 필립 글래스 오페라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불복종운동)를 제작했고, 영국 언론들은 만델라 3부작과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동상 제막과 관련 공연의 인기 공식이 혹시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한 양태는 아닌지 앞으로 유심히 살펴볼 부분이다. 런던=한정호 객원기자
◆객원기자 한정호는… 공연월간지 '객석'에서 클래식과 무용을 담당했고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홍보와 기획을 맡았다.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서 일했고 런던 시티대에 유학해 문화 정책-매니지먼트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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