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이별 장면/김민정

우리는 남자와 여자여서 함께 잠을 잤다방은 하나침대는 둘양말은 셋(여자는 손수건 대신 양말 한 짝으로 코를 풀었다지 아마) 잠은 홀수여서 한갓졌다발이 시리니 잠이 안 왔다깨어 있으려니 더 추웠다 호텔 체크아웃을 누가 할 것인가숙박 요금이 3일 치나 쌓였으니이쯤 되면 폭발적인 곁눈질이다 
우리는 기억의 주체를 흔히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회의 때 무슨 말을 했더라?' '삼 년 전 여름휴가 때 무슨 일이 있었더라?'에 대한 기억이 그러한데, 이런 기억을 두고 '수의적(隨意的) 기억'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기억은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수의적 기억은 지극히 선택적이다. 즉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일부러 기억하고자 하지 않았는데도 정말이지 문득, 불쑥, 급작스럽게 떠오르는 그런 기억이 있다. 이를 두고 '불수의적(不隨意的) 기억'이라고 한다. 불수의적 기억은 그러니까 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창피하고 비루하고 그래서 꽁꽁 감추고 싶은 기억. 그런데 그런 만큼 불수의적 기억은 윤리적이다. 그게 바로 우리의 생짜 민낯이니까 말이다. 나는 이 시를 읽다가 마지막 행에서는 급기야 큭큭 웃고 말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혼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곁눈질"로 온 저녁을 보내고야 말았다. 그때가 생각나서, 그 사람과 헤어지던 그날 그 저녁이 생각나서. 아― 진짜.  채상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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