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대리인 문제의 심각성

김창수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해운ㆍ조선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 경제에 큰 난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의 문제는 우리 경제 구조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의 종합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그렇게 호되게 겪었고 한국 경제 역사상 미증유의 위기에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 등 전 국민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와 재벌의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해운ㆍ조선 분야는 산업의 특성상 미래 경영 환경에 대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선 산업은 전방 산업인 해운 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해운 산업은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고 당연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업황이 결정된다. 세계 경기가 좋아 물동량이 증가하여 수요 측면이 긍정적일지라도 공급 측면에서 선박의 공급이 과다하면 해운업의 업황이 나빠질 수도 있다. 선박은 계약에서 인도까지 보통 2년 내지 3년의 시간이 걸리고, 건조되면 수명이 20년 이상 되기 때문에 공급이 비탄력적이다. 또한, 세계 각국 조선소의 수주 잔고가 월 단위로 자료가 나오는데, 이러한 산업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2007, 2010, 2013년에 선박 발주가 증가했을 때 그것이 향후 업황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하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상식적 시나리오가 전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 근본 이유는 대리인 문제다. 그 중 첫째가 재벌 문제인데 남편들이 사망한 이후 부인들이 경영의 전면에 나선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해도 어려울 판에 비전문가들이 경영을 책임지는 형태가 되었으니 그 결과가 이미 예견된 것이다. 소유경영자들이 매우 적은 지분을 가지고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에서 소유경영인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견제를 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또한 임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임기가 매우 짧기 때문에 설사 업황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소유경영자의 의도에 맞서 반대를 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이 잘 되는 경우는 그냥 묻어서 가는 것이고, 잘 안 되는 경우는 같이 망하는 것이다.재벌문제에 더해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국민경제 전체 차원의 대리인 문제이다. 국민들의 대리인인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국민과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에 따르면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관리 감독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이를 소홀히 한 정황이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는데 산업은행의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은 이를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장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한 이유는 한국의 고질적인 대리인 문제, 즉 관리를 하던 사람이 은퇴 후 관리의 대상인 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낙하산 인사, 전관예우 등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된 이후 계속 산은출신이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되었고, 감사위원도 산은 출신이 맡았다. 누가 보더라도 부적절한 한심한 작태이나 말만 무성하지 개선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18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횡령한 대우조선해양 전 직원이 구속되어 국민들이 할 말을 잃게 하고 있다.얼마나 더 곪아야 이러한 문제들이 개선될까? 이러한 문제는 한 국가의 경제, 정치, 사회적 관행에 근거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개선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수반되고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는 엄한 법 집행을 하여야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현재도 언론이 어떻게 구조조정을 진행하는가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고, 문제를 야기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차제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집중조명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그저 어려움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미래의 한국 경제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김창수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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