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승객 年 1억명 급증…20년내 파일럿 22만6000명 더 필요
대만 에바항공은 여성 조종사 소피아 궈의 사진이 실린 광고지를 들고 다니며 현지 대학들에서 조종사 모집에 나선다. 에바항공의 조종사 1200명 가운데 여성은 50명이다(사진=에바항공).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미국의 여성 파일럿 아멜리아 에어하트(1897~1937)가 대서양을 단독 횡단 비행한 지 80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성 조종사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국제여성조종사협회(ISWAP)의 리즈 제닝스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세계 항공기 조종사 가운데 겨우 5%가 여성"이라며 "이들 가운데 기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오늘날 항공사들은 조종사의 성비(性比)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에서 항공여행이 급증하면서 파일럿 기근 현상은 극심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의 셰리 카바리 운항 서비스 담당 부사장은 "아시아에서 신규 항공 승객이 연간 1억명 늘고 있다"고 말했다.신흥 중산층의 항공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향후 20년 안에 조종사 22만6000명이 더 필요하다. 카바리 부사장은 "조종사 성비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엄청난 항공 수요가 충족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인구 9000만의 베트남은 20년 뒤 세계 최고속 성장 10대 항공시장 가운데 하나가 될 듯하다. 베트남항공은 여성 파일럿의 가정생활을 고려해 운항 스케줄 조정에 나서고 있다. 영국의 저비용 항공사 이지젯은 영국여성조종사협회(BWPA)와 손잡고 여성 파일럿 훈련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민간 항공기 조종사 모집 광고에 여성이 등장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브리티시항공은 자체 웹사이트의 조종사 모집란에 여성 파일럿 사진을 게재했다.대만의 에바항공(長榮航空) 관계자들은 여성 조종사 사진이 실린 광고지를 들고 다니며 현지 대학들에서 조종사 모집에 나선다. 에바항공의 조종사 1200명 가운데 여성은 50명이다.민항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로라하는 항공사 대다수는 비행 경력 3000시간 이상의 기장을 원한다. 여기에 비행훈련원의 비행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에어프랑스-KLM 그룹 자회사인 저비용 항공사 트랜스아비아는 여성 파일럿의 경우 비행 12~15년이 지나야 조종간을 맡긴다.에바항공에서 조종사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리처드 예 기장은 "유능한 조종사 찾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IATA에 따르면 세계 항공 여행객 수는 오는 2034년 현재의 배인 70억명으로 늘 듯하다.일부 비행훈련원은 민항기 조종사 수요가 급증하자 필수 비행 시간조차 채우지 못한 훈련생에게 조종사 자격증을 발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인도의 한 비행훈련원은 비행 시간 35분에 불과한 훈련생에게 조종사 자격증을 발부했다 적발됐다.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 비행훈련원이라도 여성 훈련생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1982년 출범한 말레이시아 비행훈련원의 스티븐 테리 원장은 "훈련생 200명 중 여성이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비행훈련원의 파일럿 양성 2년 과정에 들어가는 학비는 7만7000달러(약 8880만원)다.테리 원장은 "일부 아시아 항공사의 경우 여성 조종사를 고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시간 비행 중 남녀 승무원이 휴식 구역을 같이 쓰는 것조차 금한 항공사도 있다.조종사의 성비 불균형은 남성이 비행기를 몰고 여성이 기내에서 음료를 서비스해야 한다는 고질적 인식 탓이기도 하다. 캐나다 밴쿠버 소재 세계여성조종사연구소(iWOAW)의 미레유 구아이어 설립자는 "사회의 낡은 인식부터 깨야 한다"고 조언했다.iWOAW는 봉사ㆍ교육ㆍ홍보로 항공우주 산업의 성별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글로벌 기업ㆍ조직의 비영리 컨소시엄이다.아시아 여성에게는 다른 걸림돌도 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싶지만 사회적 지원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여성 조종사의 경우 출산ㆍ육아 휴직으로 비행 시간이 제한되게 마련이다.이에 베트남항공은 여성 조종사의 비행 스케줄을 조정해주고 있다. 베트남항공의 조종사 1058명 가운데 여성은 11명이다. 올해 승객 1920만명이 베트남항공을 이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200만명이 느는 셈이다.여성의 역할과 관련해 고정관념이 심한 아시아에서 민항기 조종사 하면 으레 '남성의 직업'으로 여긴다. 그러나 싱가포르 소재 엠브리 리들 항공 대학 아시아의 그레이엄 헌트 학장에 따르면 민항기 조종과 전투기 조종은 다르다.그는 "조종사 하면 흔히들 영화 '탑건' 속의 주인공을 떠올린다"면서 "하지만 민항기 조종이란 복잡한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며 다른 승무원들과 협력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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