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과학이다…투표용지에 숨은 이야기[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투표가 종료되는 오는 13일 저녁이면 후보들과 지지자들은 1.8g짜리 투표용지 한 장에 울고 웃게 된다. 투표용지는 가로 10㎝, 세로 18cm(지역구 후보자 5인 기준) 크기다. 무게는 1.8g에 불과하다. 이번 4ㆍ13총선은 역대 가장 많은 21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등록하면서 정당 투표용지 길이가 33.5㎝까지 길어졌다. 하지만 무게는 3.5g이 채 되지 않는다. 투표용지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절차인 선거에 사용되는 종이라는 점에서 엄격한 품질 기준이 요구된다.투표가 '정치'라면 투표용지는 단순히 종이를 넘어 '과학'이다. 제지회사에서는 투표용지를 '기능지'로 분류한다. 기능지는 특별한 기능이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종이다. 컵라면 뚜껑(하이그로스지)이나 신용카드용지(감열지), 팬시지 등도 기능지로 분류한다.투표용지 품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표했을 때 해당 부분에 인주가 번지거나 접었을 때 묻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주적성(印朱適性)이 좋아야 한다. 인주적성이 좋아야 선거에서 발생하는 무효표를 최소화할 수 있다. 투표용지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에는 종이의 질뿐 아니라 인주도 특화돼 찍었을 때 번짐을 잘 막아준다. 완성된 종이 자체에 함유돼 있는 수분 함량이 6.0%±0.5 이내의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 것도 번짐을 막기 위해서다. 제지회사는 제품 생산 직후 일정량의 종이 시료를 채취해 건조시킨 후 건조 전후 무게 차이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수분함량을 잰다. 선거에 자동개표기가 도입된 후부터는 투표 후 접힌 이후에도 기표 된 이미지가 자동 개표기에 잘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필요해졌다. 선거에서 자동개표기는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이 전과 후의 투표용지의 기술은 큰 차이가 있다. 자동개표기로 개표하기 때문에 적당한 인장강도(引張强度)와 스티프니스(종이의 빳빳한 정도를 나타내는 강도적 특성)도 요구된다. 인장강도는 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견딜 수 있는 응력이다. 인장강도가 너무 약하면 기기에 종이가 빨려 들어갈 때 구겨지거나 찢어진다. 제지회사에서는 인장강도 측정기를 활용해 종이의 가로ㆍ세로 방향의 인장강도를 따로 측정한다. 종이의 평량(단위면적당 무게)과 두께도 균일해야 한다. 자동개표기를 통과할 때 여러 장의 종이가 겹쳐 오류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정전기 방지 기능을 도입하는 등 투표용지 안에는 다양하고 섬세한 과학이 숨어 있다. 이번 총선에는 200t이 조금 넘는 투표용지가 쓰인다. 올해 총선용 투표용지는 한솔제지 등 국내 제지회사 두 곳에서 납품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투표용지를 납품받기 전에 평량, 두께, 수분, 평활도, 인장강도 등 10가지의 까다로운 품질 조건을 내걸고 있다. 투표용지는 가볍지만 종이 한 장이 가지는 권리와 의무는 그 안에 숨어 있는 과학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지 업계 관계자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투표용지의 특성상 선관위가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제지회사들의 품질 개선 노력이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 선거가 거듭될수록 투표용지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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