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척, 유행에 따라가지 않는 척파리지엔의 생각과 삶 솔직하게 담아타인시선보다 스스로 인정받고자하는인격체로서 매력적인 모습도
최근 출간된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 본문중. 왼쪽 사진은 한국어판 표지에도 쓰였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오페라든 새끼 고양이든 딸기든, 세상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골라서 그것을 몹시 싫어해보라. 지나치게 진한 화장과 너무 많은 색깔, 과한 액세서리를 피할 것. 호흡하라. 덜어 내라. 줄여라."파리 여성이 "매일 저녁, 술 취한 날도 빠짐없이 침대 속에서 외워야 한다"며 알려준 원칙 가운데 몇 가지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 "풀오버를 한 벌만 가져야 한다면, 캐시미어", "흰 블라우스 안에 검정 속옷을 입어라, 악보 위 그려진 두개의 사분음표처럼" 같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남성으로 수십년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원칙도 있다.최근 국내에 출간된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는 파리 여성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파리지엔(Parisienne)은 파리 여성을 일컫는 말로 파리의 남자 혹은 남녀 모두를 포함한 복수의 사람을 뜻하는 파리지엥(Parisien)과는 구별되는 표현이다. 파리지엔이 프랑스를 '파리'와 '파리가 아닌 지역'으로 이분법으로 구분한다고 하니, 굳이 프랑스라는 수식어는 달지 않는다.책은 서두에 이러한 원칙 열여덟 가지를 선언한 뒤 시작한다. 모델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캐롤린 드 메그레가 본인의 친구 세명과 함께 썼다. 뭇 여성들이 좋아하는 샤넬이라는 프랑스 브랜드의 홍보대사이자 비정부기구(NGO)에서 여성 인권신장 운동을 하고 있다. 같이 책을 쓴 이는 공쿠르상 신인상을 받은 소설가 안 베레, 프로듀서로 일하는 소피 마스, 시나리오 작가이자 잡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오드레 디완이다. 학창시절부터 친구로 지낸다고 한다.목차를 보고 가장 먼저 펴본 챕터는 '남자를 뒤흔드는 몇 가지 방법'. 입으로는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눈으로는 섹스 이야기를 하는 여자. 여름이면 브래지어 입는 걸 정말 잊어버리는 여자. 한 손을 남자 허벅지 위에 턱 얹어놓고, 회의 분위기를 선정적으로 만드는 여자. 나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장담하기 힘들다.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스노비즘(snobism)을 까발리는 부분은 저자들의 자기고백이다. '12월 31일 저녁에는 혼자서 해물 한 접시를 먹고, 자정이 되기 전에 침대에 든다'거나 '마르셀 푸르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책 이름을 다 말하지 않고 애칭처럼 "찾아서"라고 줄여 말한다'는 식이다. 문자메시지를 쓸 때 줄임말을 쓰지 않고 유행을 따르기 거부하는 태도 역시 '있는 척'하는 파리지엔의 일부다.
왼쪽부터 캐롤린 드 메그레, 안 베레, 소피 마스, 오드레 디완.
원제는 '당신이 어디 있든 파리지엔으로 사는 법:사랑, 스타일, 나쁜 습관' 정도로 번역되는데 번역본 제목에 미니스커트가 들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파리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전해지는 미니스커트는 그 자체로 자유롭다는 상징이다. 전간기(1차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시기)에 샤넬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는 장 파투라는 디자이너는 당시 세계 최고 테니스 선수이자 신여성의 전형으로 평가받던 쉬잔 랑글렌의 주문에 따라 지금의 미니스커트의 원형으로 알려진 옷을 만들어줬다.저자는 "미니스커트는 남자를 유혹하고 싶다는 신호가 아니다"라면서 "시간상의 전환점, 정확하게는 옷을 입음과 벗음 사이의 바로 그 순간이다. 벗은 것도 아니고 입은 것도 아닌, 그 둘 사이"라고 표현했다. 자기주장이 강하지만 유머와 배려를 알고 자신의 모순조차도 받아들이는 태도, 누군가로부터가 아닌 스스로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타자화된 자기응시는 반드시 여성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매력적인 부분이다.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고 나이는 들지언정 늙지는 않으며 자신에게 딱 맞는 스타일링 비법을 찾아내는 자기계발의 아이콘. 파리지엔에 대한 이러한 신화에 대해, 저자는 직접 자신들을 드러내고 세세히 묘사하면서 그 이면을 보여준다. 포르노도 즐겨보고 인테리어를 위해 책을 사 모으기도 하는 게 바로 파리의 여성이다.유행 지났을 법한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낀 채 카페 한 켠 테이블에서 길가쪽을 보고 앉아, 피우다 만 꽁초에 성냥불을 붙이고 몽당연필로 수첩에 메모를 남기는 중년 여성. 나의 머릿속에 있던 파리의 여성상도 책 중간 중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고 파리지엔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오독이다. 그냥 당신의 인생을 살면 된다. 그게 저자가 바라는 바일 테다.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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