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새누리당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이름. 공천을 주자니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 반발 예상되고 탈락시키자니 여론과 수도권의 역풍 우려됐다고 합니다.바로 유승민(강조) 의원. 원조 '친박'이었지만 '진박'이 되지 않았던 유 의원은 어쩌다 거물이 됐을까요?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통' 유승민. 2002년 16대 대선 때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이회창 후보의 경제정책을 담당. 당선시 청와대행이 유력했던 이회창의 핵심 측근. 친박 이전에 그의 정체성은 '昌의 남자'였습니다.하지만 이때만 해도 존재감은… 유승민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탁구 선수 유승민.그래서 걷게 된 '친박'의 길.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전권을 쥐고 있었던 17대 총선 비례대표 선정에서 당선 안정권인 14번을 받았습니다. 이어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며 원조 '친박' 인증.2005년 유 의원은 비례대표를 사퇴하고 10·26 재보궐선거에서 대구 동구 을에 출마했습니다. 지역구를 가진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당시 박근혜 대표는 유 의원의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습니다. 유 의원도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박 대통령을 도왔습니다.잠시 멀어져 '비박'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유 의원은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며 "대통령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변함없는 마음을 강조했습니다.그랬던 유승민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이는 어쩌다 멀어졌을까요?지난해 유 의원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 공약가계부의 실패를 인정하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했죠. 박 대통령이 강력히 반대했던 '국회법 개정안'도 통과시킵니다.이에 대해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심판해달라"고 이례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어지간히 화가 났나 봅니다.결국 유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물러났고 청와대는 유 의원의 부친상 때도 조화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선대의 악연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유 의원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은 박정희 정권 반대 시위를 주도한 운동권 학생을 석방시킨 것이 빌미가 돼 재임용에 탈락, 법복을 벗었죠. '배신의 정치'에서 이번 공천을 둘러싼 잡음까지 그런데 유승민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새누리당에서는 이런 얘기도 나왔다고 합니다."친박을 포함해 모두가 패배자가 될 위기 상황에서 유일한 수혜자는 유승민 의원이다. 친박이 나서서 유승민을 정치적 거물로 키워줬다" - 정두언 의원2004년 4월 29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린 한나라당 총선 당선자 연찬회.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유승민 의원은 '나의 다짐'에 이렇게 썼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우리가 해결합시다"유승민 의원이 '배신의 정치'를 한 것인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할 것인지, 판단은 '권력자'가 아닌 국민들의 몫이겠죠.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이진경 디자이너 leejee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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