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DIY마약, 한번 빨아볼래?' 은밀한 유혹

대마 재배·감기약 필로폰·허브마약 등 '셀프 제조 마약'이 번진다

(이미지 = 게티이미지뱅크)

숙식제공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던 여대생과 사장의 대화는 얼핏 보면 화초를 사랑한 비즈니스맨의 홈 렌트 스토리, 혹은 여대생 납치를 위한 인신매매 조직 모집책의 얕은 술수 같지만 예상 밖의 사건을 초래한다.
2014년 4월 서울 동대문구 주택에서 대마를 재배·판매한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미국에서 마약 거래 혐의로 복역하다 추방된 뒤 한국에서 마땅한 직업을 얻지 못하자 대마 재배에 나섰다. 먼저 동대문구의 한 빌라를 임대한 뒤 동네 주민의 의심을 피하고자 전과가 없는 여대생을 고용, 빌라를 거주지로 제공하고 신혼부부로 위장해 재배하고 있는 대마를 관리하게 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들이 재배한 대마의 양은 4150g으로, 한 번에 1만6,000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가 2억 원어치로 파악됐다.

사진 = 미국 AMC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스틸 컷

마약도 DIY요리, 생활용품을 비롯, 인테리어까지 의식주 전반에 DIY열풍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검거된 마약사범들의 범죄행각에서 드러난 기술과 방법 또한 종전의 거래 중심 형태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재배 및 제조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마약도 DIY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고교 화학교사가 죽음을 앞두고 가난한 현실과 남아있는 가족을 걱정하며 마약제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으로 탄탄한 플롯과 정교한 캐릭터, 그리고 사실적인 마약제조과정을 보여주며 2014년 기네스북에 최고로 높은 평가를 받은 TV 시리즈로 등재되기도 했다. 드라마는 화학교사가 순도 99%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제조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했는데, 현실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져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법도 바꾼 화학박사의 신기술지난 2010년 9월 대구지검 강력부는 마약 2kg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국내 대형 전자회사 간부 A씨를 구속기소했다. 그는 미국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로 대전에 있는 한 실험실에서 필로폰 2kg을 제조한 뒤 2회에 걸쳐 1kg은 판매했고, 이어 나머지 필로폰 1kg을 판매하려다 적발됐다. 그는 연봉이 1억 대가 넘는 고소득자였으나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부양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신용불량자인 동서 B씨의 끈질긴 부탁과 화학 전문가로서의 호기심에 필로폰 제작에 참여한 정황이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그가 제조한 필로폰은 국과수 감정 결과 순도 94%의 최상급 필로폰으로 확인되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제조과정에 사용된 원료가 기존의 금지원료가 아닌 시중에 유통 가능한 새로운 화학물질인 점이었다. 통상 필로폰 제조에 주원료로 쓰여 온 염산에페드린은 현재 법적으로 유통이 금지돼 해당 물질이 함유된 감기약을 녹이거나 다른 합성물질에서 분리해서 제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A씨는 그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벤질시아나이드를 사용했다. 벤질시아나이드는 주로 화장품 원료로 쓰는 화학물질로 화학용품 취급이 용이했던 A씨는 이를 어렵지 않게 1kg당 8만 원에 총 4kg을 구입해 열흘에 걸쳐 순도 94%의 필로폰 2kg을 제조했다. 시가 66억 원어치, 총 6만 6,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kg단위의 대규모 필로폰 제조사범 검거는 10년여 만이었고, 박사학위를 소지한 화학전문가의 제조 및 판매사례는 국내 최초여서 그 충격이 더욱 컸다. 이 사건으로 이듬해 2월 1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벤질시아나이드는 마약류 1군 원료물질로 지정, 규제대상이 됐다.

사진 = 게티이미지

감기약으로 필로폰 Cooking코카나무의 잎을 정제해서 추출하는 코카인이나 양귀비꽃 열매에서 채취하는 아편은 국내에서 원료구입이 어렵기 때문에 자체제조가 어렵다. 하지만 필로폰은 화학물질의 합성을 통해 제조하기 때문에 법의 감시망만 벗어나 원료만 구한다면 제조법인 일명 ‘레시피’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감기약 제조방식을 시도하는 경우 먼저 재료가 되는 감기약 대량 확보가 필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감기약 중 에페드린이 함유된 제품은 20여 개로 이 중 대부분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 대형약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제한 없이 구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40대 전직 제약회사 직원이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전 직장 동료와 관계자를 통해 감기약을 대량구매 했는데, 용처를 물으면 다이어트용으로 판매한다고 둘러댔다. 제조법은 인터넷을 통해 익혔고, 본격적인 제조를 위해 안산에 한 다세대 주택을 임대해 재료가 되는 감기약으로부터 에페드린을 추출, 환풍 시설을 갖춘 베란다에 건조하고 방에서는 실험도구를 이용해 합성작업을 했다. 주민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모두 막고, 제조는 이웃이 잠든 심야에 주로 하는 등 치밀한 면모를 보였던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서 신용불량자가 됐고, 빚을 갚기 위해 궁리 끝에 필로폰 제조에 나섰다고 털어놨다. 한국마약퇴치본부의 2014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적발된 감기약을 통한 필로폰 제조사건은 총 7건으로 1년에 평균 1회 꼴로 발생하고 있으나, 미수에 그치거나 밝혀지지 않은 유사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 = YTN '뉴스' 화면캡쳐

신종 허브마약, 공짜 샘플도 제공최근에는 합법마약이라는 타이틀로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는 허브마약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서 사회적 문제가 된 허브마약은 현지에선 ‘탈법허브’로 통하는데, 구매가 쉽고 규제망이 없어 이를 흡연 후 환각상태로 벌인 강력범죄가 국민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2015년 2월 일본에서 숙박업을 하던 B씨는 한 일본인을 통해 허브마약의 제조를 익힌 뒤 국내에 함께 입국, 강남의 한 호텔에서 완제품과 원료를 비교해가며 허브마약 10kg을 제조 후 판매한 혐의로 구속됐다. 허브마약은 2010년부터 일본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신종마약으로 암페타민 또는 메스케치논 성분을 주원료로 하는 흰색 가루제형 물질을 물에 녹여 말린 허브 잎에 뿌린 뒤 말아서 담배처럼 태워 흡연한다. 중독성이 없다고 알려진 대마와는 달리 허브마약은 화학성분의 가루가 첨가됐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B씨의 거래 손님 중엔 16세 중학생도 있었는데, B씨가 검거 후 경찰 수사를 받는 중에도 지속적으로 구매 문자를 보내 수사팀에 적발되기도 했다.지난 8일에는 강남과 이태원의 클럽에서 공짜로 허브마약을 나눠주고 판매한 혐의로 유흥업소 직원이 구속됐다. 그는 외국인에게서 대마와 허브마약을 구매한 뒤 강남과 이태원 일대의 클럽을 돌며 일부는 판매하고 일부는 손님들에게 공짜로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공짜로 약을 건네 손님들을 중독자로 만든 뒤 지속적으로 판매할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신종마약의 제조와 판매, 그리고 공짜 샘플까지 돌아다니며 집단 흡연 및 투약이 이뤄진 것이다.

사진 = ‘묘지 파는 인부의 죽음’, 1895년, 수채와 과슈, 75*55.5cm, 파리 오르세박물관

건강을 담보로 한 거래“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보들레르는 자신의 시집 <악의 꽃>의 서시, ‘독자에게’에서 권태와 우울, 그리고 불안을 노래한다. 익히 알려졌듯 그는 대마의 일종 하시시에 취해 <악의 꽃>에 실린 시를 써내렸다. 마약을 일컬어 ‘인공 낙원’이라 했을 정도.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은 코카인 흡입 후 각성작용으로 며칠 만에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를 완성했고, 뉴욕 뒷골목을 주름잡던 검은피카소 바스키아는 코카인에 취해 수많은 명작을 쏟아냈지만 이내 약물과다복용으로 27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마약의 효능은 굳이 예술가의 예찬과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외국여행이나 유학 다녀온 주변인들의 허풍 섞인 무용담을 통해서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순간의 쾌락은 내 건강과 미래를 저당 잡혀 끌어온 빚으로 빚은 환각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 혹시나 삶의 피로와 무료함을 잊으려 마약을 찾는 당신에게 마흔 살의 보들레르가 쓴 편지를 빌려 조언하고 싶다. “모든 자극제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정신적인 방종에 몸을 맡기는 사람은 사업가는 물론이거니와 문학을 하는 사람도 될 수 없습니다. 마약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의지력을 파괴합니다.”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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