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경위님. 나 이재한 형사입니다. 여기 당신이 얘기한 선일 정신병원입니다. 건물 뒤편 맨홀에 목을 맨 시신이 있습니다. 김윤정 유괴사건 용의자 서영준 시신입니다. 근데, 엄지손가락이 잘려 있어요. 누군가 서영준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겁니다. 서영준 진범 아닙니다. 진범 따로 있어요."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시그널'에 등장하는 대사다. 2016년의 박해영(이제훈)과 과거 2000년의 이재한(조진웅)이 무전기로 교신을 하고 이들은 함께 김윤정 유괴사건의 진범을 잡아 사건을 해결한다. 과거에서 온 무전으로 용의자의 시신이 어디에 유기됐는지 알게 돼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한다는 스토리다. 드라마는 반대의 경우도 보여준다. 현재의 박해영은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를 1989년의 이재한에게 알려주고 이재한은 그곳을 순찰하다 피해자가 죽는 것을 막는다.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저녁 11시23분이면 과거와 현재의 무전이 이뤄진다는 설정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토대가 된다.
드라마 '시그널'
과거에서 현재로 무전이 오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의 교신에 대한 설명은 타임머신이나 시간여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과 맞닿아 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전파 정도는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착상에 이 드라마는 기대고 있다.시그널의 바탕이 되는 과거와의 무전 교신은 여러 영화에 등장했다. 국내영화 중에서는 유지태와 김하늘이 출연했던 '동감'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2000년의 유지태와 1979년의 김하늘이 어떻게 교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2000년 개봉한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의 '프리퀀시'가 있다. 영화에서 제임스 카비젤은 집에서 낡은 무전통신기로 어떤 남자와 교신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그곳에 살았던 30년 전의 아버지 데니스 퀘이드다.
영화 '프리퀀시'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과거와의 무선 교신이 가능한 이론적 근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자문을 맡았으며 직접 등장해 과거와의 무전이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해 얘기하는 이는 컬럼비아대학교 물리학과의 브라이언 그린 교수다. 대중적인 물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원래 10차원 혹은 11차원이어서 시간도 1차원이 아닌 다차원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고 이 새로운 차원의 시간축을 이용하면 과거와의 교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배경에는 '초끈이론'이 있다. 이는 우주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에 대한 이론인데 그는 "우주가 쿼크라는 입자보다 더 작은 진동하는 끈으로 이뤄져 있다는 가정에서 10차원의 공간에 1차원의 시간을 고려하면 우주의 구성을 밝힐 수 있다"고 했다. 이 이론은 그의 저서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통해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초끈이론을 수도용 호스로 설명한다. 이 호스는 멀리서 봤을 때 단순한 1차원의 굵은 직선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2차원의 원통형 표면을 가지고 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이 호스 위를 기어가는 두 마리 벌레는 마주칠 수밖에 없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충돌 없이 피해 갈 수 있다. 결국 그냥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도 시간을 아우르는 숨겨진 차원을 더하면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차원을 더하면 우주의 현상을 상호 모순 없이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 프리퀀시에서는 30년 만에 나타난 이상 기후 현상인 오로라가 시공간을 뒤틀어 두 사람 사이의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고 가정한다.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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