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논설위원
한마디로 기획재정부 전성시대다. 아니 독주 시대다. 요즘 관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 중의 한 토막이다.최근 이뤄진 장ㆍ차관 인사에서 대상자 7명 중 4명이 기재부 출신인데다 이미 각 부처 장차관으로 일하는 기재부 출신이 상당수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기재부 출신이 탁월한 영량을 갖췄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그들의 중용을 사시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사가 막혀버린 다른 부처 내부에 소리 소문 없이 쌓이는 불만은 기재부 출신이 새로운 부처에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특정 부처의 독주와 이에 대한 불만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튼튼한 둑에 금이 가게 해서 결국 무너지게 하는 작은 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난 15일 이뤄진 인사에서 기재부 출신은 4명이 발탁되거나 승진했다. 앞서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등의 장차관에 기재부 출신이 임명됐다. 지방자치단체까지 찾아보면 숫자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이들은 거의 모두 이 나라 최고 대학을 나왔고 행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그 좁다는 기재부 관문을 통과한 인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예산실과 경제정책국, 정책조정국, 세제실 등에서 예산과 정책, 세제를 총괄하면서 전 부처의 업무를 종합으로 살펴보고 조정하는 역량도 충분히 쌓았다. 덕분에 기재부 관료들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정책 기획과 총괄, 조정 능력 등에서 다른 부처 관료들에 견줘 경쟁력이 앞선다는 평가가 많았다. 따라서 박근혜정부 들어 이뤄진 기재부 출신의 중용에 대해 최경환 전 부총리가 자기와 함께한 사람을 끝까지 챙긴 '최경환의 힘'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것은 옹색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또한 과거에도 다른 부처 장차관으로 여럿 임명된 전례가 있어 유독 이번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시비를 걸기도 어렵다. 일례로 임창열 전 장관을 비롯, 정덕구ㆍ윤진식ㆍ최경환ㆍ최중경 등 무려 5명의 기재부 출신이 현 산업부 장관에 임명됐다. 관료로서 그들 개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퇴임 후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박병원 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보라. 그는 행정고시 17회로 옛 재정경제원 예산정책총괄과장 경제정책국장, 차관보와 제1차관을 거쳐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내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복귀했다. 그는 관료생활을 마친 뒤에는 전국은행연합회장도 지냈다. 경제정책국장 시절 그의 방을 찾노라면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넘쳐흘렀고 지금도 그렇다.박근혜정부가 임기 후반기를 맞아 정책의 성과를 내기 위해 이들을 임명했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는다. 산업통상정책을 책임지는 산업부는 지난해 내내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뚜렷한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또 국토교통부는 행복주택 건설 등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기획력과 조정력을 갖춘 기재부 출신을 투입해 각 부처를 장악하면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인사권자의 판단은 적절해 보인다. 문제는 기재부 출신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과유불급이다. 청와대에 검사 출신이 많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통령은 기획, 총괄, 조정능력이 탁월한 기재부 인사를 등용해 정책의 성과를 내겠다지만 기재부 출신들의 독주 추세에 대해 다른 부처의 시선은 곱지 않다 못해 싸늘하다. 어떤 부처는 "우리는 기재부 2중대"라며 자조하고 또 어떤 부처는 승진기회가 줄어든다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진정으로 현명한 기재부 출신이라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장관이라는 직위가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협조를 구하는 소통이어야 한다. 과거 기재부 출신 장관의 거침없는 언행으로 특정 부처의 많은 에이스 관료들이 사표를 내고 떠난 일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그것이 최근 일련의 인사가 옛 경제기획원이 큰 그림을 그리면 다른 부처는 이를 집행해야 하는 구시대 관행을 답습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아닐까.박희준 논설위원 jacklon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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