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 사회부 차장
새벽 4시45분,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자동차 열쇠를 몇 번이고 돌려봤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자동차 배터리가 말썽을 부린 탓이다. '침착해! 침착해!'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렀다. 빠른 선택이 필요했다. 지하철역은 집과 1.5㎞ 거리다. 그곳에서 출발하는 강남행 광역버스 첫차는 오전 5시다. 그 차를 놓치면 지각이다. 무사히 도착해서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빠듯한 시간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어느새 4시50분을 가리켰다. 출발은커녕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발도 전진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은 이제 사라졌다. 택시를 타고 가거나 배터리 문제를 해결한 뒤 직접 차를 몰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 새벽 교통 상황을 고려할 때 택시를 타면 지각 걱정은 없다. 택시라는 안전판을 마련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험회사 긴급출동서비스에 전화를 해 봤다. 정말로 긴급 출동이 이뤄진다면 내 차로 출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 '1588-○○○○' 전화를 걸자 신분 확인을 위한 절차가 이어졌다. 초조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얼마나 흐른 것일까. 지루했던(?) 시간은 끝이 났다. 곧이어 긴급출동 기사의 전화가 왔다. 시계를 봤다. '1588' 번호로 전화한 지 불과 1분 만이다. 이름만 '긴급'이 아니라 진짜 긴급 대응이었다. '대한민국 만세!'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12~14분 뒤에 도착할 것이라는 긴급출동 기사 얘기에 다시 놀랐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 새벽에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점프선'을 통해 시동을 거는 것은 금방이다. 실제로 기사가 도착한 지 1분 만에 모든 게 마무리됐다. 뒤늦게 마음속 한구석에 있던 '찜찜함'이 생각났다. 자동차 배터리 문제는 예견된 결과다. 열흘 전에도 똑같은 문제로 긴급출동서비스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새 차를 산 뒤 5년 동안 한 번도 배터리를 교환하지 않았다. 사실상 방치한 셈이다. 우연은 어쩌면 필연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그 배터리는 이미 수명이 다했고 언제라도 문제가 생길 상황이었다. 15년 전 처음 '내 차'를 갖게 됐을 때는 어디 상처라도 날까 애지중지했는데 지금은 너무 무심해졌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익숙함은 결국 소홀함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곁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잘해줘야 하는데…. 퇴근길, '치맥(치킨+맥주)'이라도 준비해서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영화, 드라마, 연예인, 소설….' 아내의 요즘 관심사를 함께 나누며 그동안의 '무심함'을 속죄해보련다.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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