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으로 산다 시즌2]은행창구, 갈림길에 서다③-끝

예전엔 월급날이면 고객들이 줄을 길게 섰었는데 이젠 찾아가야…핀테크·모바일뱅킹 발전으로 전통적 업무경계 허물어져

은행원의 억대 연봉이 이슈다. 하는 일에 비해 급여를 많이 받는다는 지적이다.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저금리에 수익성이 악화되는 와중에 핀테크(기술+금융)로 대변되는 금융혁신의 파고마저 높다. 생존을 위한 금융개혁에 직면한 은행원들은 "더 이상 우리는 금수저가 아니다"고 항변한다. 지난 7월 <대한민국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번 은행원들의 삶과 애환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배지를 떼어낸다. 앞으론 넥타이 맬 일이 없겠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된 은행원이 사내 게시판에 썼던 글이다. 이듬해 6월 대동ㆍ동남ㆍ동화ㆍ경기ㆍ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은행원의 신화도 함께 깨졌다. 창구에 앉아 '이자놀이'를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사실 이때 이미 종언을 고했다. 다만 위기극복의 시대가 지나고 1990년대 30여개에 달하던 시중은행이 10곳 내외로 압축되면서 같은 파이를 더 적은 숫자의 은행들이 나눠먹으며 안주하던 시간이 얼마간 이어졌다. 그 마저도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산산조각났다. "옛날엔 작대기를 들고 고객 줄을 세웠고, 지금은 앉아서 기다리거나 찾아가죠. 옛날에는 자산이 아주 많아야 PB(자산관리 전문가) 센터로 모셨는데 이제는 문턱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A은행 김성하 상무(50ㆍ가명)는 달라진 은행 창구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입행원 당시 종각 지점에서 일했던 그는 "건설사 해외 근로자의 월급을 주던 날은 창구가 발디딜틈이 없이 북적였다"며 "온라인 시스템이 없었을 때여서 수기 작성을 하고 원장을 만들고 일련번호를 확인하는 작업을 모두 수작업으로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보니 월급날(25일)이나 월말에는 일더미에 짓눌려 밤샘을 하기 일쑤였다. 시대가 변했다. 지금은 지불계와 수납계, 시공과계라는 창구 이름도 '빠른창구'와 '상담창구'로 바꿨다. 손님이 창구에 오는 게 아니라 은행이 손님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태블릿 PC를 들고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은행원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단체 고객, 중소기업, 벤처ㆍ소규모 상가 등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친다. B은행 이승수 차장(40세 가명)은 "처음에는 직원을 밖에 내보내 고생을 시키는게 아니냐는 내부 반발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우수한 직원들이 이 직군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좋은 인재들이 창구 업무를 꺼리면서 은행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같은 은행의 최소현(37세ㆍ가명) 과장은 "외부 영업 직원들은 차로 이동을 하는 등 비용이 발생하는데다 개인 영업력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진다"며 "창구 업무 직원들 같은 급여 체계를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원의 업무와 기능이 다양해지는 만큼 성과급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같은 의견은 최근 은행원 급여체계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과 맞물려 향후 관련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핀테크(기술+금융)와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인터넷전문은행 등 전통적인 은행 업무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변화가 속속 도입되는 것을 은행원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C은행 김수남 부장(49 가명)은 "사거리마다 은행 지점이 있는 풍경이 급속히 변하는 중이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사거리에 A B C D 은행 지점이 있다고 치면, 예전에는 A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고객이 B, C, D 은행에서 인감을 변경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렸다. 원장을 A지점에 보내 대조하고 전산을 수작업으로 변경하는 절차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A은행에 B은행 통장을 들고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사거리에 은행 지점 4개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김 부장은 "내가 신입 행원이었을 때는 은행원 하면 창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올랐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며 "은행의 기능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는 변화를 은행원의 달라진 모습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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