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 파고다 그후 2년]1-②무료급식 이어받은 원경스님

'지난 겨울, 추위에 떠는 어르신들 본 뒤 이 일을 안할 수 없었다'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진흙 밭에서 연꽃을 피워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파고다공원 곁을 지키며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온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지난 4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동안 이곳을 지켜온 보리 스님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심곡암 주지스님인 원경 스님이 앉게 됐다.지난 8일 만난 원경 스님은 당시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추운 겨울이었다. 한 신도의 요청을 받고 직접 여길 와보니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렇게 딱해 보일 수 없었다"면서 "하루 세 끼를 점심 한 번으로 해결하려는 분도 계셨다. 나라도 이분들에게 힘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말끔하게 새단장해 2년 전에 비해 분위기가 밝아졌다. 법당 겸 식당인 건물 2층 내부를 새로 도배하고 고장난 냉장고와 오래된 식기들도 처분했다고 한다. 급식소에 밝은 빛이 들고 예전처럼 어르신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순항할 줄 알았지만 지난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를 맞아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원경 스님은 "주변의 무료급식소와 복지관이 모두 문을 닫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평소의 2배에 달했다"며 "당시 자원봉사자들도 부담을 느껴 이탈자가 속출하면서 일시 폐쇄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고 전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주변 이웃들이 도움을 준 덕분이었다. 불교 신자들과 개인 봉사자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지금은 30개조의 자원봉사팀이 구성돼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님은 "어찌 보면 '복지의 마지막 보루'인데 희망의 불씨를 끌 수 없었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점심을 대접한 기억이 가을 햇살 속에선 추억이 된다"고 회상했다. 또한 사무국장, 총무, 후원회장 등 새로운 식구가 생겨 제법 체계를 갖추게 됐다. 식단도 기존의 비빔밥에서 카레, 덮밥, 국수 등으로 보다 다양해졌다. 주변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는 공휴일이나 명절에는 원각사 무료급식소의 역할이 더 빛을 발한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하루 250명 이상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고 가족애를 베푸는 마음으로 송편을 나눠주기도 했다. 원경스님은 "단순히 밥 한 끼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닌,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이 깃들어 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어버이날에는 자녀들의 아쉬움을 채울 수 있도록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자선음악회, 문화 강좌 등도 구상하고 있다. 원경 스님은 파고다공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단 어르신들이 숨을 트는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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