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베이 시공 비하인드스토리…'만든 놈들부터 타 봐!'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만든 놈들부터 타 봐!”1996년 5월,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공사 현장에 처음 배치받았던 삼성물산 직원 A씨가 당시 에피소드를 돌아보는 글을 작성해 관심을 끈다. A씨는 신입사원 교육 직후 동료들과 함께 출근한 곳에서 수영복과 샌들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시공사 입장에서 직접 체험을 해보고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하는 업무였다. 워터파크에서 물놀이하면서 근무하는 것이었다. A씨는 “모두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즐겁기만 한 게 아니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시설물을 돌면서 문제점을 찾아내야 했다. 맨발로 걷다가 못에 찔리고 날카로운 난간에 손을 다치기도 했다. 서핑보드를 테스트하다 수영복이 벗겨지는 ‘참사’도 있었다고 한다. A씨는 “모두가 극도로 지쳐갔다”고 기억했다.

워터봅슬레이

마침내 하이스피드 슬라이드에 물을 흘려보내라는 현장소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 직원 수영복 차림으로 집합!” 지금은 ‘워터 봅슬레이’라고 불리는 캐리비안베이의 명소로 높이 40m의 고공 미끄럼틀이다. A씨는 “현장 직원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공포에 질린 채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했다. “누가 먼저 탈 거야?” 누구도 슬라이드를 타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A씨는 “워낙 높고 물과 함께 미끄러져 거의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심장 약한 사람은 올라서기도 겁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직원들은 ‘좌우 날개 부위 가드가 낮아 잘못하면 그대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라는 걱정부터 ‘애가 몇이 있다’느니 ‘장가도 아직 못 갔다’느니 이런 저런 사연을 핑계로 댔다고 한다.그 때 현장소장의 한 마디에 희비가 교차했다. “이거 누가 만들었어?” A씨는 “우리는 모두 설비팀을 쳐다보며 ‘설비인데요’라고 합창을 했다. ‘만든 놈들이 먼저 타 봐’ 그 한마디에 역시 소장님다운 현명한 판단이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설비팀 직원들은 순간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설비팀의 막내 기사가 떠밀리다시피 출발대에 서게 됐고, 운영팀에서 전수 받은 '생존법'(다리를 곧게 펴서 꼬고 팔은 가슴에 교차해서 붙이는)을 중얼거렸다. 몇 번을 망설이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미끄러져 내려갔다.“으악~.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내 눈에는 마치 그냥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래까지 멀쩡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설비팀을 필두로 모든 직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미끄럼틀을 최초로 타 보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됐다. 등에 빨갛게 긁힌 자국이 있는 직원은 어느 위치에서 긁혔는지 설명을 해야 했고 설계된 속도를 맞추기 위한 반복적인 테스트가 진행됐다.” 이런 과정 끝에 만들어진 캐리비안베이는 지난해 세계테마엔터테인먼트협회(TEA)가 발표한 세계 4대 워터파크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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