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수학귀신'이 세상 바꾼다

대중교통 혼잡·선거예측·300Mbps 초고속통신 등 수학으로 풀어

▲수학이 미래 사회의 해결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이른바 우리나라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수학은 어렵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생들은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수학을 공부합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순간, 수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어렵고 재미없고 성적도 오르지 않으니 아예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도 있겠는데 무엇보다 현재 수학 교육 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수능 시험을 보기 위해서만 수학을 공부하다보니 이런 현상은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학은 예상외로 여러 가지 분야에 기본이 되는 학문입니다. 최근 산업과 사회문제 해결을 하는데 수학을 이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학이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최근 빅 데이터(Big Data)시대에 진입하면서 수학자들의 역할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수학자들이 각 산업분야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붐이 일고 있는 중입니다. ◆교통 문제, 수학이 풀었다=통일을 한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었습니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 통합되면서 베를린은 심각한 대중 교통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흩어졌던 동서 사람들이 동시에 한 공간에 모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죠.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를 그냥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하염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긴 행렬이 통일된 베를린의 한 상징처럼 떠올랐죠. 교통 혼잡으로 출퇴근 시간이 급증한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통일이 된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지 국정과제가 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해법은 '버스를 늘리면 된다'와 '버스 노선을 확대하면 해결된다'로 접근할 수 있겠죠. 베를린 시는 이 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해 공모를 실시했습니다. 버스를 증차하고 노선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공모에서 선정된 연구팀은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마틴 그뢰첼(Martin Grotschel) 교수팀이었습니다. 그뢰첼 교수는 정수계획법(Integer programming)이라는 최적화 이론을 적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통현황을 반영해 버스 노선의 대대적 개편과 가변 배차시간표를 도입했습니다. 한 마디로 최적화에 따른 노선의 합리적 운용과 배차 간격을 융통성 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개편한 것이죠. 그뢰첼 교수의 방법을 통해 통합된 베를린 교통체계는 1800대의 버스를 1300대로 줄였음에도 오히려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데 성공합니다. ◆선거 예측, 정확히 맞추다=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50개 주별 결과 중 49를 정확히 예상한 통계 기법. 2008년 미 상원 선거 결과 35개를 모두 명확하게 예상했던 시스템. 2009년 타임(Time)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사람이 있습니다. 네이트 실버(Nate Silver)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출신인 네이트 실버는 미국의 통계학자이자 정치 분석가, 언론인입니다. 네이트 실버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주별 결과를 100% 맞췄습니다. 네이트 실버가 이 분야에 나서게 된 배경은 단순합니다. 당시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내놓는 선거 예측이 상당부분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이죠. 그는 직접 선거 예측 전문블로그인 'Five Thirty Eight'를 개설해 운영했습니다. ◆구리선으로 300Mbps, 수학이 풀었다=LTE 속도의 시대. 빠른 통신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고민 중 하나는 기존 통신 인프라를 어떻게 이용 하느냐에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각 가정에까지 구리선이 연결돼 있었죠. 초고속인터넷시대 맞춰 구리선을 광섬유로 전환하는 데는 천문학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구리선을 사용하면서 데이터 통신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벨랩 수학자들이 나섰습니다. 벨랩 연구원들은 새로운 행렬 역변환(matrix inversion)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구리선으로 300Mbps까지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로써 현재의 통신 인프라를 앞으로 10년 동안 사용가능한 것은 물론 이기간 동안 점진적 인프라 업그레이드를 진행해 수조원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수학이 통신 인프라의 알고리즘을 분석해 최상의 상태를 밝혀냄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효과적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죠. ◆스마트워치, 수학이 들어있다=최근 스마트워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팔목에 스마트 시계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스마트 워치의 기본도 수학입니다. 이용자의 생체데이터를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수집합니다. 빅 데이터를 통해 분석된 생체 데이터와 비교한 후 상호 유사성을 판단하게 되죠. 이 같은 유사성을 알아내기 위해 고도의 수학적 기법이 사용됩니다. 진단결과 유사성이 상당히 높을 경우에는 병원을 방문해 정밀검사를 받도록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병원 방문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래 사회는 빅 데이터를 통한 수학적 모델 분석이 각광받는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갈 길 먼 우리나라 수학의 현주소=영국에서 수학연구의 경제효과를 정량화한 2012년 11월보고서(Measuring the Economic Benefits of Mathematical Science Research in the UK)를 보면 영국 수학 연구의 현 주소를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영국에서 수학연구는 영국 총부가가치(Gross Value Added)의 16%인 32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고 합니다. 280만개의 일자리 창출(영국 전체 일자리의 10%)과 수학분야 노동 생산성은 7만4000파운드(영국 평균 3만6000파운드)에 달했습니다. 반면 국내 수학계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박형주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는 "국내 수학 분야 연구력의 빠른 성장이 아직 수학과 산업의 연계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선진국의 경우 순수 수학분야 연구자와 산업응용 수학 연구자의 수가 비슷한데 국내에서는 순수 수학분야가 88%를 차지하는 등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수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 같은 수학 교육의 대전환은 논리적,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가진 시민교육을 강화하고 미래 혁신을 이끄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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