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임정 2인자였던 약산 김원봉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1945년 11월23일 미군 수송기 한 대가 중국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다. 미국 군정청은 임시정부(임정)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인 불안정을 줄이기 위해 임정 그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군정은 임정 요인이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도록 하고 수송기를 제공한 것이다. 수송기는 탑승 인원이 15명 정도에 불과했다. 충칭(重慶)에서 상하이로 옮겨온 임정 국무위원 전원과 수행원을 다 수용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는 임정 국무위원이 먼저 타야 했다. 임정이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었으나 임정이 의사결정을 위한 국무회의를 열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누가 먼저 귀국할지를 놓고 "이놈" "저놈" 소리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한독당 측이 상식을 부정하고 백범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과 일부 국무위원 그리고 수행원들이 먼저 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장준하는 회고록 '돌베개'에서 한독당 측은 김구 일파를 먼저 입국하게 함으로써 '임정=한독당=김구'의 등식을 널리 알리려고 했다고 전했다. 여기엔 진보적인 약산 김원봉과 그의 민혁당을 부담스러워한 미군정의 의도도 개입됐다. 김원봉은 귀국하는 수송기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매우 경멸했다. 김원봉은 임정 군무부장이었지만 2진으로 밀려났고 그해 12월2일 미군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전북 옥구 비행장에 착륙했다. 앞서 11월23일 경교장에 여장을 푼 김구는 기자회견, 귀국 방송, 정당 대표자들과의 회견, 원로와의 면담, 임정환국봉영회 참가 등 일정을 통해 '임정=김구'라는 등식을 구축했다. 당시 국내 대중은 임정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김원봉은 임정 내에서 제2인자였다가 환국 후 국내에서는 김구, 이승만, 김규식에 이어 제4인자로 소개됐다. 김원봉을 잘 아는 이는 그가 가끔 손해 보는 일을 잘한다고 평했는데 환국 1진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것이 가장 적합한 사례가 됐다.(염인호 '김원봉 연구')환국 후 위상이 낮아졌지만 김원봉은 항일 투쟁에서 김구와 임정보다 앞서 나갔다. 임정은 무장투쟁에 소극적이었다. 1921년 9월 조선총독부를 부분 파괴한 의열단원 김익상이 1922년 상하이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향해 권총을 쏜 사건에 대해 임정은 자신들이 결코 개입하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백범은 1932년 이봉창ㆍ윤봉길 의거를 지휘했으나 이는 "민족운동이 매우 침체하여 군사공작이 어려우면 테러공작이라도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해 임정 국무회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택한 전술이었다.(김구 '백범일지') 또 두 거사는 김구가 나서서 시작했다기보다 두 의사가 스스로 김구를 찾아와 제안하고 의욕을 보여서 추진됐다.독립운동에 뛰어들고자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약산은 우러름을 받았다. 독립투사ㆍ작가 김학철은 '숭배하는 마음을 갖고' 약산을 만났다고 훗날 들려줬다.약산의 위상은 1937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가 조선인을 특별훈련반에 입교시키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훗날 인민군 부참모장을 지낸 이상조는 "중일전에 참전하기 위해 난징(南京)으로 가서 먼저 김구가 영도하는 임정 측에 갔으나 사람들이 너무 연로하고 청년들을 전투에 참전시킬 방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여러 청년들과 함께 약산 쪽으로 갔다"고 회고했다. 당시 약산에게 모여든 조선 청년은 백수십 명이었다. 백범도 입교를 지원하는 조선인을 모집했지만 청년들은 대부분 약산 아래 모였다가 그의 인솔에 따라 입교했다. 이는 약산의 활동에 비추어볼 때 당연한 선택이었다. 약산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고 1926년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했다. 또 중국 국민당에서 지원받아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해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기에 걸쳐 각각 군사 간부 40여명을 양성한 바 있다. 진보적 독립투쟁가 약산은 국내에 입국한 뒤 위상이 격하됐다가 월북 후에는 잊힌 존재가 됐다. 뒤늦게야 영화 '암살'로 다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다. 그가 다각도로 재평가되기 기대한다.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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