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오늘 링컨의 그 연설을 다시 되뇌는 까닭은

백종민 국제부장

영화 링컨의 첫 장면. 남북 전쟁(실은 영어식 표현인 Civil Warㆍ내전이 맞다) 전장을 찾아 홀로 앉아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 주위로 북군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병사들은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신념에 찬 얼굴로 외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사라지지 않는다(Gover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로 끝나는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19일)이다. 이런 장면을 영화에 삽입한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대통령의 연설을 병사들이 줄줄이 외고 있다니. 이 장면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픽션이라고 해도 감독과 작가가 이런 장면을 넣을 만큼 링컨에 대한 신뢰가 깊다는 뜻 아닐까. 게티스버그 연설의 전문을 찾아봤다. 약 2분간의 연설을 위한 10문장 정도의 길지 않은 글이었다. 작가 데일 카네기는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에서 링컨이 게티스버그 연설을 했을 당시 참석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링컨은 특유의 모자를 벗어 꺼낸 원고를 읽었을 것이고 몇 마디 말하지도 않은 채 연설은 끝났다. 환호의 박수도 없었다. 연설 당시의 반응과 달리 이 간결한 명문이자 명연설의 생명력은 1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을 영화의 장면은 대변했으리라. 지난 20일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46년이 되는 날이다. 달 탐사 관련 외신을 정리하다 미국 달 탐사 계획의 시발점이 된 장면을 보았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이다. 유튜브는 클릭 몇 번으로 그때의 연설장으로 인도해준다. "10년 안에 달에 가기로 결정했다(We choose to go to the moon in this decade)"고 선언하는 케네디의 라이스대학 연설(1962년 6월12일)은 지금 들어도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울림이 느껴진다. 이 연설을 듣고 달 탐사 계획을 반대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케네디의 명 연설은 이뿐 아니다.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기를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Don't ask you what your country do for you but ask you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역시 명문이다. 대서양을 건너가 보자.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수상이 단호한 어조로 읊조리는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We shall never surrender)"는 연설은 문화 상품이 됐다. "나는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는 문장도 여전히 회자된다.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화법이 단연 눈에 띈다. 연설의 내용을 넘어 형식 자체가 파격이다. 테러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며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고 정치 풍자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해 역사적인 이란 핵 협상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국민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권위 없이도 큰 설득력을 보여줬다. 오바마는 차고에서 진행되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마틴 루서 킹 목사다. 킹 목사는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 연설(1963년 8월28일)에서 "나에겐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역사적인 3단어의 문장을 남겼다. 꼭 역사에 남을 장문의 글이나 연설을 남긴다고 위대한 정치인이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링컨도 짧은 문장을 쓰고 말하기 위해 수없이 글을 고치고 고민했을 것이다. 이런 수고가 불멸의 영역 인터넷에서 '님자'나 '외계어 화법'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리더라면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야하지 않을까. '아리송해(1979년 이은하)'는 노래 제목으로만 남아야 한다. 국민은 3단어 아니 5단어의 짧은 문장에도 충분히 공감할 준비가 돼있다.백종민 국제부장 cinqang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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