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성게 같은 것이다 / 성가셔서 쫓아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 무심코 내게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찾아간 것도 아니다 / 그런데 성게가 헤엄쳐 왔다 / 온몸에 검은 가시를 뾰족뾰족 내밀고 / 누굴 찌르려고 왔는지 / 낯선 항구의 방파제까지 떠내려가 / 실종인지 실족인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심장 / 실종은 왜 죽음으로 처리되지 않나 / 영원히 기다리게 하나 / 연락두절은 왜 우리를 / 노을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항구에 앉아 있게 하나 / 달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앉아 있게 하나 / 바다에 떨어진 빗방울이 뚜렷한 글씨를 쓸 때까지 / 물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하나 / 기다리는 사람은 왜 반성하는 자세로 / 사타구니에 두 손을 구겨 넣고는 고갤 숙이고 있나 / 꽃나무 한 그루도 수습되지 않는 / 이런 봄밤에 / 저, 저 떠내려가는 심장과 검은 성게가 / 서로를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밤에 -박서영의 '성게' 그해(2014년)의 세월호는 소용돌이를 멈추지 않는 이 나라 시의 슬픈 원천이 되었다. 하늘을 흔드는 굉음의 시도 되었다가 바다 밑을 가르는 벼락의 시도 되었다가 이렇듯 사람의 내면으로 굴러들어와 온몸이 가시가 되어 지나는 곳마다 찔러대는 성게로 변신하기도 한다. 박서영은 사망자도 되지 못한 채 영원한 기다림으로 남은 실종자가 남긴 포말들의 소실점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성게처럼 가시를 전방위로 곤두세운, 사라진 아이가 있다. 미친 듯 그 가시덩이를 껴안는 마음이 이 시의 찌르는 듯한 고통과 낭자하게 출혈하는 아픔을 이룬다. 대체 성게란 동물은 무슨 두려움과 분노가 저토록 치솟아 온몸을 가시로 칠갑한 것일까. 저토록 스스로를 웅크리며 가시를 내어 모든 것을 찔러댈 만큼 내면에 보호해야 할 무엇이 있단 말인가. 조물주의 과장법인가. 혹은 형상만 그렇게 꾸며 상대방을 겁주기 위한 속임수일까. 성게는 타인을 찌르는 형상을 하고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 많은 가시들로 스스로를 찌르는 모양새가 아니던가. 남을 찌른다는 건 그만큼 자기를 찔러야 하는 일이다. 그토록 가시를 돋우기 위해선 스스로도 가시의 뿌리를 쥐고 분노와 증오의 악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 슬퍼하기도 힘겹고 오래 미워하기도 오래 분노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은 가끔 타자에게 성게가 되기도 하지만 늘 성게가 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또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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