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가 꽃을 피우려는지 인조 가죽이 여러 갈래로 튼다. 갈라진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올라온다. 의자는 몇 해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 굵고 탄력 있는 스프링 꽃대가 아직도 등받이 근처 등뼈처럼 구부정하다. 아버지는 담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암은 어느 꽃의 구근이었는지 뿌리를 뽑아내자 한순간 몸속 가득 꽃을 피웠다. 나는 마른 꽃대처럼 남겨졌다.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 수명을 다한 형광등에 푸른 멍을 보았다. 곰팡이 가득한 천장이 보였다. 떠나고 남는 것이 모두 꽃의 혼령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안 되겠다 꽃이 피면 안 되겠다. 아버지 기일 오기 전에 소파를 고쳐야겠다. 형광등을 갈고, 바닥이며 천장도 손을 봐야겠다. -이성목의 '이제 꽃 피면 안 되겠다' 실부(失父)의 경험으로 빚어진 꽃의 트라우마랄까. 도처에서 꽃을 발견한다. 꽃 핀다는 것을 그간 행복하고 아름답게만 여겨왔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 시인은 꽃을 '느린 폭발'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꽃이 피는 모습을 '빨리 돌린 영상'으로 보면 폭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폭발은 꽃이 피었을 때까지가 아니라 그것이 낙화하여 바람에 흩어질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생명의 작동이라고 믿고 있지만 신(神)은 꽃마다 작고 강한 폭약들을 장착해서 지상에 내보내는 목숨의 테러범인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간 암(癌)줄기의 꽃도 결국 아버지를 폭파시켰다. 소파의 뜯어진 자리로 튀어나온 스펀지도, 맛이 가기 시작한 형광등 불빛 속에 끼어든 푸른 멍, 천장의 곰팡이, 이 모든 것이 꽃들이며 존재와 세계를 폭파하기 위해 잠입한 가미가제가 아닌가. 꽃들은 그렇게 순교하면 제가 보낸 신의 왼쪽 자리에 앉는 것을 믿고 있겠지만 9ㆍ11처럼 참담한 피해자들은 어디로 보내는 것인가. 아직은 꽃들과 싸워야겠다. 내가 내 목숨껏 온전히 폭발하는 것을 방해하는 저 꽃들의 저격을 피해야겠다.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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