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일본 유학 시절 나는 난생처음으로 검도라는 것을 배웠다. 도쿄대에는 유서 깊은 '시치도쿠도(七德堂)'라는 이름의 검도장이 있다. 유학 가자마자 무작정 찾아가 검도를 배우겠다고 했다. 일본학생들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나중에 첫 외국인 회원을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태어나 한번도 '시나이(죽도)'를 잡아 본 적도 없는 생초짜였고 그들은 나와 띠동갑 후배 정도로 한참 어린 학부생이었으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여름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죽도를 휘둘러댔다. 이들과 지내면서 배운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조금 할 줄 안다'라는 일본어가 사실은 지극히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신입부원으로 인사를 한 후 친해지게 된 후 검도 실력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으면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약간 할 줄 압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을 한국식으로 이해해 '배운 지 얼마 안 된 초짜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 한다는 학생이 검도 3단, 아니 심지어 6단짜리도 있었다. 또 하나 배운 중요한 교훈이 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이날도 부원들과 함께 상대의 머리를 내려치는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내 죽도가 갈라져 상대 학생의 얼굴에 박히는 대사건이 생겼다. 대나무는 횡으로 결이 갈라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갈라진 나무결이 머리에 쓴 호구를 뚫고 들어가면 심한 경우 눈이 다쳐 실명할 수도 있다. 분명 연습 전에 죽도를 확인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기에 당황했다. 다행히 눈은 피했지만 분명 내 과실이었기 때문에 그 신입생 후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 나와 껄끄럽던 3학년 '선배'가 화난 표정으로 다가왔다. 싸운 적도 없었지만 친하지도 않는, 그러나 우호적이지도 않은 그는 왜 죽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냐고 따지고 들었다. 이미 해당 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후였기에 새삼스럽게 건수 잡았다고 덤비는 그 선배가 불쾌했다. 내가 이미 사과했다고 말하고 자리를 피해버리자 그는 선배로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는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노야로(이 놈이)'라고 외치고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쳤다. 호구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툭 치는 정도였지만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주먹으로 힘껏 상대의 얼굴을 때려 주었고 그 선배는 50명이 넘는 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놀란 주장(캡틴)이 와서 내 팔을 잡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연장자로서 참으셔야지요. 폭력은 곤란합니다.' 어쨌든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려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또 하나 배운 교훈이 있었다. 일본인과 한 번 싸우면 평생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주장을 비롯한 부원들의 권유에 의해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화해의 악수를 했지만 그 선배는 졸업하는 날까지 나와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경우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술 한잔 하고 나면 다시 친구가 되지만 일본인은 한 번 관계가 깨지면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의 한일 갈등이 임계치를 넘고 있다. 과거의 혐한(嫌韓)이 일본의 일부 우익 세력에 국한되었다면 지금은 일반국민에게까지 번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 최대 서점인 키이노구니야의 입구에는 혐한서적 코너가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1995년 일본 유학 이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다. 도쿄대 검도부 선배와의 싸움에서 검도부원 누구도 나의 정당방위를 부인하지 않았다. 또 싸움 후에 내가 그 선배에게 악수를 청해 화해를 하는 듯이 보였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도 더 늦으면 회복불능이 될지 모른다.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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