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억달러 외화운용·금융허브 조성 역할…메릴린치 투자손실 후 폐지論 쏟아져
한국투자공사(KIC)는 지난해 세계 28개 연기금·국부펀드가 참여한 공공펀드 공동투자 협의체 ‘CROSAPF(Co-investment Roundtable Of Sovereign And Pension Funds)’를 개최했다.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설립 10년째를 맞는 한국투자공사(KIC)가 시끄럽다. 투자 내용이 논의 과정 중에 외부에 공개돼 논란이 되는가 하면 국회에서는 KIC 폐지론을 언급하고 있다. KIC는 '외환보유액의 효율적인 운용'이라는 설립 목적을 고려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국부펀드인 KIC는 어떻게 생겨났고 논란의 쟁점은 무엇일까. KIC는 2005년 설립됐지만 관련 논의는 1999년부터 시작됐다. 외환보유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가자 일부 자산을 공격적으로 투자해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에서 조금씩 흘러나왔다. 기재부가 벤치마킹한 모델은 싱가포르투자청(GIC)이었다. 당시 기재부 측은 GIC를 방문하며 추후 KIC 설립을 준비했다. KIC 설립 논의가 불붙은 건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동북아 금융허브론이 대두됐고 중심에는 'KIC 설립'이 있었다. 수년간 관련 자료를 수집해 온 기재부는 KIC 설립을 강력 추진했고 2005년 관련법 통과, 같은 해 KIC 설립에 이른다. KIC는 한국은행(이하 한은)과 기재부로부터 외환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은이 안정성을 위주로 투자했다면 KIC는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수익률을 높여보겠다는 것이다. 2013년말 기준 위탁자산은 600억 달러다. KIC에는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자의 역할도 주어졌다. 정부는 한국에 외국계 자산운용사를 유치하려면 그들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고 봤다. KIC에 외환을 일부 맡겨 이를 외국계 운용사에게 위탁 운용하면 자연스레 외국계 회사의 국내 유치가 가능하리라고 내다봤다.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여기에는 한은을 향한 기재부의 불신도 다소 섞여 있었다.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이나 재경부 고위 공무원들은 국회에 출석해 "한은의 외환 운용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전문성도 높지 않으니 별도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 투자기관을 만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던 셈이다. 이전까지 외환운용을 맡아 온 한은은 KIC의 설립에 부정적이었다. 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외환운용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맡고 있고, 싱가포르 등 일부 지역에서만 별도 투자기관을 두고 있다. GIC도 운용 외환 중 중앙은행 출자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외환은 싱가포르 내 연기금이나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것들이다. 한은으로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두고 굳이 싱가포르 방식을 택하려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취임초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던 정책에 한은이 계속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KIC 설립에 동의하되 외환은 '예탁'이 아니라 '위탁' 형식으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결국 설립에 찬성했다. KIC가 외환을 운용하며 투자기준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으면 예탁이고, 한은의 기준에 따라야 하는 것이면 위탁이다. 한은으로서는 외환 일부를 내어주되 최소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위탁한 외환은 국제통화기금(IMF)에게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받는다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까지 김태동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KIC 설립을 반대했다는 점은 유명하다. 김 전 위원은 "여러 면에서 KIC 설립은 적절성이 없다. 향후 부실투자가 나올 여지가 있다"며 경고했고, 실제로 3년 후 KIC는 그 유명한 메릴린치 부실투자를 단행한다. KIC를 일반 국민에게 알린 건 2008년 미국 메릴린치에 투자하면서다. 당시 정부는 '국부펀드의 성공적인 투자행보'라며 홍보했으나 불과 수개월 뒤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되며 1조원 가량 평가손실을 입었다. 당시 투자 과정상의 미숙함과 엉성함이 나중에 감사원 조사에서 밝혀졌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여야를 중심으로 KIC 폐지론이 나오는 건 안홍철 KIC 사장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KIC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크다. '굳이 KIC를 유지하며 외환을 맡겨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국회는 KIC의 기능을 한은으로 흡수시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자고 말한다. KIC도 할 말은 있다.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을 봐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KIC 관계자는 "KIC라는 기관 하나 만든다고 바로 금융허브가 생겨나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시간을 좀 더 두고 지켜봐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IC 내부서는 조직 폐지론이 달갑잖으면서도 '그래도 한은으로의 흡수통합'이니 나쁠 건 없다는 입장이다. KIC의 모태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 한은은 KIC 폐지론에 심드렁하다. 한 한은 관계자는 "KIC 폐지 얘기는 10년 동안 계속해서 나왔다"며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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