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재발견…'경계와 확장'

이종구, '빨래'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우리 그림 '한국화'를 살펴볼 기회가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것과 별도로, '한국화'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국 사람의 그림이다. 한국화 속에는 우리 정신과 역사, 철학, 문화가 함축돼 있다. 근ㆍ현대사의 질곡을 지켜본 옛 서울역을 배경으로 전시된 동시대 우리 그림들은 '한국화'의 의미를 더 깊게 한다.'문화역서울284'는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는 옛 서울역사를 새단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284'는 옛 서울역사의 사적번호(史蹟番號)다. 이번 전시에는 동양화, 서양화, 사진, 설치, 조각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예술가 스물아홉 명이 참여했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한국적 정신문화가 깃든 다채로운 주제들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나왔다. 전시 총감독이자 작가로 참가한 우종택(48) 감독은 "우리 시대에 '한국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그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작가들 나름의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신이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참여 작가들은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연배가 높은 작가들에겐 구 서울역에서 한국화 전시를 연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1959년 이른 새벽에 미술대학 시험 보러 처음 서울역에 내렸지. 싸늘한 공기 속에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던 역 앞 광장의 긴장감이며, 역에서 내려다 본 청파동과 세브란스 병원도 눈에 훤해. 의욕만 있고 막막했던 그 때, 나의 청년시절의 시작점이 됐던 이곳에서 생전에 작품을 올린다는 게 감개무량해." 1층에 있는 옛 부인대합실에 작품을 설치한 곽훈 화백(74)은 서울역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그가 이번에 만든 작품은 높이 5m 규모의 거대한 '한지 방'이다. 한지 여러 장을 붙여 사각 텐트처럼 제작했다. 한지가 가진 따뜻한 성질이 외부 창을 통해 햇빛을 받아 방 안을 더 정감어린 분위기로 만든다. 작가는 이 대형 작품을 두고 '点(점)'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애환과 희망, 욕망과 좌절, 사랑과 이별, 즐거움과 고통을 껴안고 출렁이는 바다 위에 등대처럼 홀로 서 있는 서울역만큼 진실한 건축물이 우리 곁에 있을까"라며 "깨알 같은 작은 점 하나를 작품으로 찍을까 한다. 영광의 탑에 오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라고 했다. 같은 층 로비에는 차기율 작가(54)의 작품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강화도 자연석과 나무를 이용해 포도 줄기와 같은 형태로 만든 작품이다. 인간과 자연의 순환구조, 문명과 자연의 융합을 표현하려 했다. 작가는 "'한국화가 무엇인가'라는 논쟁은 상당히 오래 진행돼 왔다. 이젠 한지나 먹과 같은 재료적인 부분만을 두고 한국화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조선시대에 유화가 전래됐다면, 유화를 그리지 않았을까? 한국화는 정신적인 의미로 접근된다"고 말했다.

곽훈, 점

홍지윤, '애창곡'

홍지윤 작가(여ㆍ45)가 설치한 작품들은 동양적 아우라가 강한 색감으로 연출돼 있다. 오방색들의 향연이 눈을 집중하게 만들고, 작가 자신이 직접 부르고 읊는 애창곡이 귀를 쫑긋하게 한다. 홍 작가는 "현대미술을 통해 어떻게 동양과 전통 철학을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지속적으로 작업해 왔다.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단일민족 개념이 아닌, 다원화된 문화로 많은 요소가 결합돼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아시아 퓨전'이란 표현으로 확장하기도 한다"며 "이 중에 시서화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할지 고민했다. 시가 곧 노래이고, 대중가요가 바로 현대의 '시'가 아닐까. 작품이 갖는 주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공감각적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우종택 작가의 작품 '시원의 기원'은 강원도 골산 곳곳의 휘어진 나뭇가지들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 놓았다. 작가는 숲속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굴곡진 나무에 먹과 숯가루를 칠하며 어둠과 죽음을, 역으로 또 다른 생명을 전하고 있다. 영상설치 작업을 내놓은 김승영 작가(52)는 고요하면서도 정신적인 색이기도 한 파랑으로 한 공간을 꾸몄다. 흰 소금으로 산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구름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장면을 비췄다. '구름'이라 이름붙인 이 작품은 삶에 대한 허무, '공(空)'을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순환을 얘기한다. 이종구 화백(70)의 '빨래' 작품도 눈길을 끈다. 한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세밀하게 그려낸 꽃무늬 티셔츠와 몸빼 바지, 양동이와 슬리퍼는 농촌의 할머니를 기억하게 만든다. 이 화백은 "1980년대부터 작업해 온 세계가 바로 우리나라의 소외된 농촌과 농민의 삶이었다. 농부의 자식인 나로서는 그것을 기록하고 예술로 고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우 감독은 "한국화는 우리의 정신을 대표하는 예술"이라며 "디지털 문명 하에서의 문화 지형은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과거 선진국에 의해 주도되었던 수직적, 종속적 문명대신 수평적이고 개별적인 개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중시하는 다양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 환경은 우리 미술, 한국성에 대한 재고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전시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오는 30일까지. 02-3407-3500.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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